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고린도후서 › 3:9-11

Dawn Word

고린도후서 3:9-11

새 언약의 영광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밝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2026. 10. 2.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3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3:9-11 정죄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의 직분에는 더 큰 영광이 넘칠 것이고 전에는 영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훨씬 더 큰 영광이 나타나서 존재감을 잃게 되었다. 폐지되도록 정해진 옛 언약의 영광과는 달리 새 언약의 영광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이전 말씀은 돌판에 새긴 율법을 전하던 직분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인데도 잠시 영광이 있었다면 영의 직분에는 얼마나 그 영광이 크겠느냐는 영광의 밝기 비교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두가지의 빛의 양의 비교와 빛의 지속 시간의 비교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해지는 영광은 이전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9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8절에서 영의 직분에 얼마나 다 많은 영광이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9절에서는 두가지 영광의 빛의 양을 비교하고 있다.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이 여기서는 유죄를 선고하는 정죄의 직분으로 바뀌었다. 이와 비교되는 의의 직분은 법정에서 죄가 없다고 선고하는 직분을 말한다. 유죄를 선고하는 모세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무죄를 선고하는 사역에는 훨씬 더 많은 영광이 넘친다는 것이다.

무죄를 선고하는 의란 윤리적 행위가 아니다. 죄를 하나도 안지었기에 무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를 받았기에 받을 형량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의가 윤리적 의미가 아니라 관계적 의미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신분을 가리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칭의시 부여되는 의를 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자신의 피로 산 하나님의 자녀로 소개하자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해 주시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또 의란 빚을 탕감 받고 대신에 통장에 어떤 잔고가 생긴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죄의 벌은 사라지고 대신에 상장과 푸짐한 상을 덤으로 받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여기서 넘친다는 표현은 마치 쌀독에 쌀을 계속 쏟아서 가득 차고도 흘러 넘칠 때까지 계속 부어준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쏟아지는 영광의 빛의 양이 너무 많아 가득차고도 흘러 넘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영광이 가득차고도 넘칠만큼 많다는 것이다. 정죄의 직분을 행하던 모세의 얼굴에도 잠시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게 해주는 의를 담당하는 직분에는 얼마나 더 많은 영광이 흘러 넘치겠느냐는 것이다.

10절도 역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더 많이 넘치는 영광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비교 대상은 지금까지 빛나던 것인데 원어는 과거에 완전히 영광되었던 것이다. 이는 출애굽기 34장의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의 빛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모세의 언약 전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런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영광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완전히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영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라는 말은 새언약의 탁월한 영광을 가리키는 말이다. 새언약의 탁월한 영광 안에 옛 영광이 있기에 영광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탁월한 영광 때문이라고 10절 끝에 설명이 붙어있다. 훨씬 더 밝은 빛이 나타났기에 그동안 완전히 밝다고 하던 빛이 빛을 잃은 것이다.

본인의 어머니께서 어릴적 등잔불을 켜다가 양초가 처음 들어와 촛불을 켜니 방안이 대낮처럼 밝았다고 하신 적이 있다. 본인이 어릴적 백열등을 켜다가 어느날 형광등으로 바꾸었을 때도 그랬다. 이는 마치 낮에도 켜져있는 가로등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밤에는 가로등이 정말 밝았는데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니 가로등은 아예 안켜진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처럼 훨씬 더 밝고 훨씬 더 많은 양의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과거에는 눈부시게 빛났던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은 그 빛을 잃었다. 이는 모세가 전한 율법을 전하는 직분은 이제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훨씬 더 밝은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도 해가 뜨면 빛을 잃게 된다. 빛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밝은 빛이 나타났기에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복음의 영광이 압도적이기에 옛언약의 영광은 그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번째 비교는 11절에 나와 있는데 이는 빛의 지속시간의 비교이다. 과거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도 영광을 입었다면 길이 남을 것은 얼마나 더 큰 영광이겠느냐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을 전하는 직분에 나타난 영광은 곧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이는 구약의 율법의 효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폐지되는 뜻한다.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면 이전 계약은 무효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옛 언약은 처음부터 폐지되기로 결정된 언약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남을 새 언약이 등장하자 그 효력을 잃은 것이다. 모세의 언약은 폐지되도록 정해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모세의 언약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영원히 존재할 새언약의 영광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비교를 통해 바울은 자신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구약의 율법을 전하는 자들을 통해 나타난 영광과는 비교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 영광의 밝기에서도 비교가 안되고 그 영광의 양에 있어서도 비교가 안되고 그 영광의 지속시간에서도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영원한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기에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그 영광은 구약의 율법을 전하는 자들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