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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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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7-8

영원한 영광의 직분

2026. 10. 1.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3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3:7-8 돌판에 새긴 율법을 전하던 직분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인데도 잠시 영광이 있었다면 영의 직분에는 얼마나 그 영광이 크겠느냐?

이전 말씀은 우리의 확신의 저자는 그리스도이시며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이런 일을 할 자격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돌판에 새긴 율법을 전하던 직분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인데도 영광이 있었다면 영의 직분에는 얼마나 그 영광이 크겠느냐는 것이다.

바울은 먼저 출애굽기 34:29-35절에 나온 내용을 소개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기에 나온 내용을 알아야 한다. 출애굽기 34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왔을 때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했다. 이는 여호와를 대면했기 때문에 그 영광의 빛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두려워했기에 모세는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는 너울을 벗고 있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명령하신 일을 전하고 나서는 다시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광채와 영광은 원어에서 같은 말이다.

원어에서 7절은 그러나 만약 돌에 새겨진 글자 안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 도 영광 안에서 되어졌다면 이라는 조건으로 시작한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판은 율법 전체와 결부되어있고 모세의 사역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돌에 새겨진 글자들인 십계명 돌판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56절은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했다.

유대전통은 시내산의 율법을 생명의 선물로 이해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죽음의 직분이라고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 죄의 잘못이다. 바울은 율법이 사람을 살리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여 죽이기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로마서 7:10절에서도 바울은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내게 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7:13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죄가 아니라 죄가 죄를 드러낸 것이라며 죄가 유죄라고 했다.

돌에 새겨진 글자들이라는 말이 결코 읽히거나 이해되지 않을수도 있는 속성을 갖고 있고 또 돌이라는 죽은 무거운 물질에 새겨진 것이라는 속성도 갖고 있다. 3:3절과 6절에 돌에 새겨진 글자들이라는 표현은 죽음의 직분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바울이 여기서 대조하는 것은 3절에서 말한 것처럼 돌판에 쓰인 글과 심장에 쓰인 글이다. 돌에 새긴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결국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받았던 모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이라고 한 것이다.

원어에서는 이어서 그 결과 라는 말로 이어간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역을 맡은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있게 된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모세의 얼굴을 주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없어질 모세의 얼굴에 남아있던 광채 때문이다. 바울은 그 광채를 현재 사라져가고 있는 광채라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형태로 중계방송을 한다. 이는 마치 충전되어 빛을 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배터리가 소진되고 꺼지게 되는 휴대폰의 모습과도 같다.

8절은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 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바울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났던 계속 사라지고 있는 광채와 자신이 만났고 전하는 영원하신 영광의 광채와 비교하고 있다. 따라서 앞에서 사라져가는 옛 언약의 광채와 영원한 영광의 광채를 비교한 것은 옛 언약은 사라지고 새 언약이 등장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비교하는 대상은 7절에 있는 죽음에 직분과 8절에 있는 영의 직분이다. 죽음의 직분이란 7절에 보면 돌에 새겨진 문자로 되어 있는 것을 전하는 직분이다. 모세가 전하던 돌에 새겨진 율법은 어기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율법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모세의 직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직분은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직분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과는 반대로 8절에 나와 있는 영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즉 얼마나 더 밝은 광채가 나겠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죽음의 직분의 반대가 영의 직분일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삶으로 회복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악한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지키지 못해 다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는 죄를 용서하고 살려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구약의 율법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은 율법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시킨 사랑의 법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한 것이다. 옛 율법과 새로운 복음의 차이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가 아닌가에 있다. 만약 오늘날 우리도 신약성경에 있는 말씀만 열심히 머리로 익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영이 없는 율법과 똑 같은 것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간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사랑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지 지식을 가지고 정죄하라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을 전하는 사역도 눈이 부실정도로 빛이 났다면 생명을 주는 성령의 사역에는 얼마나 더 빛이 나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사역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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