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14-15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죽음의 향기이고 구원을 얻을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인데 우리는 저 장사꾼들과 달리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전 말씀은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우리를 포로로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뿌리는 역할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하며 이 향기는 구원 얻는 사람이나 멸망 당할 사람이나 모두에게 뿌려지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죽음의 향기이고 구원을 얻을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인데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내용이다.
16절은 원어에서 한편으로는 …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라는 형식으로 말하는 내용이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에게는 죽음으로부터 나와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향기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나와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라고 말한다. 이는 로마의 개선 장군의 행렬에서 향을 뿌리는 장면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 향은 곧 처형될 포로들에게는 죽음의 향기가 되는 것이고 살아남을 포로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과 생명이라는 단어가 두 번씩 반복되는데 원어에서는 ek(from) 죽음 eis(into) 죽음, ek(from) 생명 eis(into) 생명으로 되어 있다. 물론 영어에서는 into 죽음 또는 생명이 쓰이지 않는 표현이기에 그냥 to로 번역하지만 원어는 분명히 방향성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ek는 근원이라는 의미이다. 죽음의 근원이 되는 향기이고 eis는 죽음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향기라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향기이고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라는뜻이다.
바울은 우리라고 말하며 그 향을 뿌리는 역할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한다고 했기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다. 사도들은 복음 전파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15절에서는 영어의 Be동사와 같은 동사로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 즉 사도들이 곧 향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메신저와 메시지가 구별이 불가능하다. 향기는 사도들이면서 동시에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에서 나와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가 되고 그 복음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나와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는 것이다. 같은 향기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15절에서는 구원을 얻는 사람이 먼저 나오고 멸망하는 사람이 뒤에 나왔는데 16절에서는 멸망하는 사람이 먼저 나온다. 구원 멸망 멸망 구원의 순서로 멸망이 샌드위치의 중간에 끼워져 있다. 노아의 홍수 때 여덟 사람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는 다 죽었고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롯의 가족만 남고 다 죽었다. 이러한 구조로 죽음이 중심에 있기에 바울은 죽음을 더 강하게 죽음을 강조한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향기를 풍기게 한 것에 감사한다고 한 것은 결국 죽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울의 메시지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대를 예상하거나 대응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9:3절에서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내 형제 곧 내 동족을 위하여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토라를 해치는 사람으로 보고 공격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받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16절 끝부분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자가 누구냐고 질문을 한다. 이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자신의 적합성을 고민한 것을 반영한다. 사도행전 18:5-6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비방한 것에 대해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사도행전 18:12-13절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총독 갈리오에게 고발했다. 그 밖에도 여러곳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반대했다. 바울은 동족들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과연 복음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기에 충분한가 고민을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다. 반면에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복음 전하기에 합당한 자격을 가졌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17절 이후에 바울 일행이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말과 연결된다.
17절 맨 앞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원어에 있다. 이는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냐 하면” 이라는 뜻이다. 이어 17절 앞에서 바울 일행은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사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부적격자들이 누구인지 나온다. “많은 사람들처럼” 이란 말은 다수의 거짓 사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이는 3:1절의 “어떤 사람들” 과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사꾼이라고 번역된 말은 불법거래나 속임수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야바위꾼이라 할 수 있겠다. 마치 사과상자 위에다가는 좋은 사과들을 올려 놓고 밑에는 썩은 사과들을 가득 채워서 파는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다. 저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에 와서 복음을 변질시키고 사람들을 속이면서 그들에게서 돈이나 갈취하려는 거짓 사도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유사품과 비교해서 설명하면서 속지 말라고 광고하는 것과도 같다. 오늘날도 돈벌이를 위해 예수를 믿는다면 역시 부적격자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일꾼들의 특징을 네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원어에서 맨 앞에 나오는 말은 “진실한 마음으로” 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야바위 장사꾼의 반대를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합당한 자격 첫번째는 돈을 탐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두번째 나오는 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처럼 하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미국에 파견된 주미 한국 대사와도 같다. 한국 대통령이 자신을 대신해서 대통령의 뜻을 전하는 것이 주미 한국대사의 임무이다. 이처럼 우리도 마치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고 파견한 대사와도 같다는 것이다.
세번째 나오는 말은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지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여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네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 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 말한다는 것은 마치 이미 본인이 싸인을 해서 준 우리 아들에게 준 백지수표와 같은 것이다. 아들이 등록금이나 집세등 지불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금액을 잘 모를 때는 제가 아들 이름을 써주고 싸인만 해서 주었다. 그러면 아들은 정확한 금액이 나오면 거기에 금액만 적어서 사용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일행의 이름을 쓰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싸인을 해서 주신 것이다. 바울 일행은 맡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황에 맞게 전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맡겨주신 것만 말한다는 뜻이다. 내 아들이 내가 준 백지수표를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다면 저는 다시는 백지수표에 싸인을 해서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아들을 믿기에 백지수표에 싸인해서 몇 장씩 아들에게 맡겨준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도 우리 마음대로 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한다면 다시는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범위 안에서 그분의 뜻에 맞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