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3-4 직접 가지 않고 편지를 썼던 이유는 자신이 기뻐하는 사람들로부터 슬픔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나중에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며 마음 속에서 흘러넘치는 짓눌림과 답답함과 눈에서 흘러 넘치는 눈물로 그 편지를 쓴 것이고 그것은 자신 안에 넘치는 사랑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나는 또 다시 아픔을 주는 방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슬프게 하는 사람들만이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내가 이런 편지를 쓴 것은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슬픔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며 눈물로 편지를 쓴 것은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는지를 알려주려는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3-4절은 눈물로 편지를 쓴 목적을 밝히는 내용이다. 3절은 먼저 그리고 내가 이런 편지를 썼다는 말로 시작한다. 다수는 내가 썼다는 말이 2:1절의 결정했다는 말과 병행되는 것으로 2:3, 4, 9절과 7:12절의 그 편지가 모두 다 같은 편지라며 실제로 과거에 쓴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편지를 썼다는 말은 과거에 엄중한 경고의 그 편지를 쓴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과거에 직접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때 그 편지를 쓴 목적은 먼저 내가 갔을 때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사람들에게서 슬픔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슬픔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말은 가정법이기에 내가 만약 방문했더라면 슬픔을 겪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편지를 썼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실제로 고린도 교인들을 만났을 때 기쁨 만이 넘쳐 나길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바울은 아예 안 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은 눈물로 편지만 써서 보내고 나중에 가겠다는 뜻이다.
원어에서 나를 기쁘게 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말에는 마땅히 나를 기쁘게 했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한국어 식으로 표현한다면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어? 내가 네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데… " 라는 것과 같은 마음인 것이다. 한없는 사랑을 주었는데 반대로 바울의 등에 배신의 칼을 꽂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자신이 갈 때 날 기쁘게 할 사람들에게서 내가 마음 아픈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을 기쁘게 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바울이 첫번째 방문했을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친 사람들이다. 지금은 그들에게 배신을 당해 등에 칼이 꽂힌 채 아파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들이 변화되어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3절 뒷부분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확신하면서” 라는 뜻이기에 확신하면서 이 편지를 썼다는 뜻이다. 그 확신은 여러분 모두 즉 고린도 교회 모든 성도들에 대한 것이다. 확신하는 내용은 나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과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바울과 똑 같은 기쁨을 느낄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바울처럼 부모의 마음을 갖고 부모에게 대들며 부모를 죽이겠다고 하는 자식을 두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처럼 연약한 형제 자매들을 돌보게 될 것을 확신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돌보는 사람들이 변화되고 성장하면 그 때 자신들도 배신의 아픔으로 슬퍼하며 기도하던 바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눈물로 편지를 쓴 목적은 다음 번에 갈 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기뻐하길 확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눈물로 편지를 쓴 첫번째 목적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바울처럼 눈물로 다른 사람들을 양육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만날 때는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기뻐하며 거두려는 것이다.
편지를 쓴 두번째 목적은 4절에 나와 있다. 4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확신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먼저 개역은 큰 환란과 애통한 마음으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몹시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말의 본래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환난이나 괴로워한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눌린다는 뜻이다. 마치 무거운 바위에 짓눌려 꼼짝도 못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애통한다는 말이나 괴로워한다는 말은 함께 붙잡고 있다는 뜻인데 구약에서 사방으로 포위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 쓰이기도 한 말이다. 따라서 위에서 짓눌리고 사방으로 포위된 것과도 같은 상태이다. 여기에 많은 이라는 말이 붙어있기에 바울의 마음은 정말 많이 짓눌리고 사방에서 꽉 잡혀있어 꼼짝도 못하는 정말 아프고 답답한 마음이다. 원어는 이러한 마음이 바로 이 편지가 나온 바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또 많은 눈물을 흘리며 라는 말은 바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아픔과 답답함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마음은 그렇게 아픔과 답답함이 있고 겉으로는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내적 상태와 외적 상태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펜에 잉크로 글씨를 쓰는데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서 쓴 글씨들이 다 번지는 장면과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눈물로 썼던 편지는 너희로 마음 아프게 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랑은 특별히 너희를 향하여 흘러 넘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한글 번역들에서는 놓치기 쉽지만 원어에서는 세가지가 흘러 넘치는 장면을 느낄 수 있다. 제일 먼저 내적으로는 짓눌리고 포위된 것 같은 슬픈 마음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장면이다. 외적으로는 눈물이 흘러 넘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이 편지는 바로 너희를 향해 흘러 넘치는 사랑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사랑은 바울 자신의 것이 아니고 예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바울도 예수님께 분노를 품고 믿는 자들을 죽이려는 분노가 그 마음에 넘쳤던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원수인 바울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신 것이다. 그 사랑을 받은 바울은 예수님의 원수인 자신 안에 흘러넘치는 사랑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흘려 보내려는 것이다. 바울도 역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들에게 배신을 당한 상태였다. 예수님과 똑같이 원수들에게 그 사랑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바울이 눈물로 쓴 편지는 마음 아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그 사랑을 깨달아서 저들도 다른 성도들을 향해 그런 사랑을 품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기쁨을 나누며 거두어들이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