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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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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1:18-20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았다면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9. 16.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1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1:18-20 나는 자신이 계획을 바꾼 것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고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통해서 전달한 복음도 하나님께서 옳다고 그리스도를 통해 내려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멘으로 올려드린다.

이전 말씀은 우리는 여러분에게 자랑거리가 될 확신이 있었기에 먼저 여러분에게 가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것은 여러분에게 두 번 은혜를 받기 위한 것이고 여러분에게 두 번 들러 여러분의 후원으로 예루살렘에 가도록 계획을 바꾼 것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 일행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이라는 내용이다.

바울은 자신들이 계획을 수정한 것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뒤에는 왜 자신들이 변덕이 아닌지 자신들을 변론해야 맞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하나님을 변호하고 있다. 이는 바울의 신실함이 바울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신실함을 변호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변호한 것은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18절의 시작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이다. 개역에서는 “미쁘시다” 라고 번역했는데 미쁘다라는 말은 “믿음직하다”는 말이다. 영어로는 faithful 이라 번역하고 있다. 원래 이 말은 계약에 쓰이는 말이다. 계약한 것을 잘 지킨다는 뜻이 미쁘다 신실하다로 번역된 말이다. 이 말은 17절에 나온 변덕스럽다는 말의 반대말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표현이 완전한 맹세 공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문맥에서 바울이 여행 계획을 바꾼 것에 대한 논쟁을 자신이 강하게 방어하는 상황이기에 맹세가 자연스럽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맹세할 때 하나님은 나의 증인이시라는 공식을 사용하기에 이는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증인되심 이 두가지가 결합된 형태이기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바울의 신실함을 보증한다는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울이 맹세할 때 쓰는 공식이 따로 있기에 맹세라기 보다는 자신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을 전하고 있기에 자신의 말은 곧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는 바울이 말하는 “우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말이란 초기 복음 선포와 고린도 성도들에게 한 모든 말과 편지 전체를 포함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바울의 여행계획과 함께 바울이 실바노스와 디모데와 함께 전한 복음 메시지 전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복음 선포와 바울의 전체 삶과 방문하지 않은 결정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 더 넓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말의 핵심은 바울 일행이 전한 편지나 말로 전한 복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바울 일행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은 자신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말이다. 그걸 인정하면 그 다음 우리가 한 말인 복음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전한 말은 자신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말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변호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만 변호한 것이다. 바울이 전한 말씀은 “예” 했다가 “아니오” 했다가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속이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행 계획에 대해서 예 아니오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한 것을 19절에서는 복음 전체로 확대한다. 더 큰 복음이 신실하다면 더 작은 여행계획도 실실할 수 밖에 없다는 논증 구조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절 끝부분에서도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에 아멘으로 외친다고 했다. 그 아멘은 복음의 진실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여행계획 같은 사소한 문제는 거짓되게 행동했을리 없다는 뜻이 된다. 이는 더 큰 것으로 더 작은 것을 명하는 기법이다.

이어서 19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부분 그리스어 문장에서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는 첫 단어 바로 다음에 온다. 그런데 여기서는 네번째 단어 자리에 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배치한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근거는 그저 예수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자신의 아들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그분이라는 말을 왜냐하면 앞에 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신실하신지 이유를 설명한 것인데 바로 그분 하나님의 아들 때문이라는 뜻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18절에서 설명한 우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말의 어순 때문에 중요한 말이 뒤에 가 있지만 원어에서 왜냐하면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한 “우리의 말”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근거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그분은 우리를 통해서 여러분 가운데서 선포되어진 분” 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한국어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하나 사라졌다.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우리를 통해서 선포되어진 분” 인데 그중 “통해서” 라는 말이 사라졌다. 일반적으로는 통해서 라는 말 대신에 "의해서" 라는 전치사를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해서" 대신에 "통해서 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통해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뜻이다. 통하여 라는 말은 받은 것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들의 말이 믿음직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말로 대신한 것이다.

바울 일행이 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라고 바울 일행에게 알려 준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이미 선포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거에 이미 그대로 전달했으니 받은 말씀을 되새겨 보라는 것이다. 그 말씀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한 우리가 누구인가 하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이렇게 세사람이다. 세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에 와서 전했겠지만 모두 다 자기들이 보태서 말하지 않고 모두 똑같이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세사람을 내세운 것은 신명기 19:15절에 나온 증인의 조건에 맞는 것이다. 세사람이 똑같은 말을 증언했으니 그 전한 말씀은 분명한 진리인 것이다.

그분은 “예” 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 도 되신 분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어떤 때는 “예”도 되었다가 어떤 때는 “아니오” 도 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 말은 과거에 한번 이루어진 것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사건을 말한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 안에는 ‘예’ 만 있을 뿐이다”는 부활하신 후 영광 받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스런 자리에 이미 오르셨고 영원히 그 자리에 계신다는 뜻이다.

20절도 역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인가 하면 이란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 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yes 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예와 아멘은 긴밀한 관계에 있다. 계시록 1:7에 보면“nai, amen!” 이라고 되어 있다. “nai”는 “yes” 라는 뜻이다. 하나님 편에서 옳다고 nai 라고 하면 사람 편에서는 amen이라고 화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20절 뒷부분에도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믿는 자들은 아멘으로 화답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려야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라고 번역해야 맞다. 하나님 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분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옳다고 하셨다. 통해서 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했다는 뜻이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전달되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오면 우리는 “아멘” 으로 화답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란 일차적으로 바울 일행이다. 바울일행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멘으로 화답하여 영광돌리게 되는 것이다. 또 이는 우리 모두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멘으로 화답하여 영광돌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yes”라고 하며 우리에게 내려오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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