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5-17 우리는 여러분에게 자랑거리가 될 확신이 있었기에 먼저 여러분에게 가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것은 여러분에게 두 번 은혜를 받기 위한 것이고 여러분에게 두 번 들러 여러분의 후원으로 예루살렘에 가도록 계획을 바꾼 것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전 말씀에서 여러분은 우리를 부분적으로 이해했지만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는 서로가 완전히 알게 되어 서로가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계획을 수정하여 먼저 고린도에 갔다가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에 와서 유대로 갈 작정이었는데 이런 것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자신들을 보라고 자랑하던 바울은 이제 신실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다. 자신들을 보라고 자랑한 것은 자신들을 인도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라는 뜻이었다. 계획을 몇 차례 수정한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증거라는 뜻이다. 바울이 계획을 바꾼 것은 일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번 더 은혜를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15절 시작부분은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라는 뜻의 말로 시작한다. 이러한 확신이란 지난 주 말씀인 13-14절에 나온 내용이다. 오직 말씀을 통해 완전히 알아서 서로가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랑거리가 될 것을 확신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점점 더 말씀을 따라 거룩해져서 주님 오시는 날에는 서로 함께 자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가지고 있던 확신이다.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먼저 고린도에 가기로 계획한 것이다. “먼저” 라는 말은 고린도에 가는 것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16절에서 두 번 방문 계획에 근거해서 먼저 라는 말은 이번은 첫번째 방문이다고 다음에 두번째로 다시 방문한다는 뜻이다. 고린도에 먼저 가는 것은 15절 뒷부분에 “두 번 은혜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두 번이란 말은 두번째일 수도 있고 두 번일 수도 있다. ESV 는 “second experience of grace” 라고 번역했고 KJV도 “second benefit” 이라고 번역했다. 둘 다 두번째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NASB는 “twice receive a blessing”이라 했고 NIV는 “benefit twice” 라고 번역했다. 이 두 번역은 “두 번” 이라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 문제는 16절의 여행계획을 보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원래 바울의 여행계획은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고린도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16절의 여행계획처럼 바뀐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바울일행은 원래 고린도를 거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갔다가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는 계획이었다. 그 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지원을 받아 유대로 갈 계획이었다. 이 일정에 보면 두 번 고린도에 들르게 되어 있다. 따라서 두번째가 아니라 두 번 은혜를 받게 하려는 것이 바울이 말하려는 뜻이다.
은혜라는 말은 영적인 유익을 뜻하는 말이다. 바울이 직접 가서 바울 자신의 고난의 경험을 들려주고 말씀을 가르쳐 주어 거룩함과 신실함으로 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서 영적인 유익을 두 번 받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은혜라는 말이 RSV에는 기쁨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4세기 Codex Sinaiticus에 따른 것이다. 그 차이는 카린이냐 카란이냐에 있다. 카린은 은혜라는 뜻이고 카란은 기쁨이란 뜻이다. 둘 다 같은 어원에서 온 말이다. 은혜는 영적인 선물이므로 받으면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24절에도 기쁨이라는 단어를 다시 쓴 것도 은혜와 기쁨이 같이 통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주려는 영적인 유익인 은혜는 결국 영적인 기쁨인 것이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두 번 이라는 말과 연결되기에 일반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바울이 경험한 특정한 혜택을 의미한다. 바울 자신이 받았던 기쁨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두번이나 나누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은혜를 나누어 주고 서로 그것을 자랑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바울일행이 고린도에 가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주고 나서 마케도니아로 가려한 것이다. 마케도니아 교회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건너와 처음 복음 전하고 교회를 세운 곳이다. 이들은 바울 일행의 선교사역을 후원하던 후원자들이었다. 마케도니아에 갔다 오려는 것은 마케도니아 성도들의 선교헌금을 받아가지고 오려는 것일 것이다. 선교헌금을 받아가지고 고린도에 와서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고 또 그들이 어려운 가운데 기쁨으로 헌금한 것도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16절은 15절에서 두 번 유익을 받게 한다는 말의 의미를 여행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풀어주는 내용이다. 16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15절의 마음 먹었다는 말을 설명해주는 종속절들이다. 먼저 고린도에 방문했다가 고린도를 고쳐 마케도니아로 들어간다. 그 다음에 다시 고린도로 왔다가 고린도 교회의 지원을 받아 유대로 떠나기로 계획했다는 뜻이다. 새번역에서 지원을 받아 라고 번역하고 개역은 보내줌으로 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여행에 필요한 재정이나 식량이나 여행 동반자 등으로 지원해 주는 것을 뜻한다.
이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유대이다. 유대라는 말은 “유대사람의” 라는 뜻의 말이다. 그 뒤에 땅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이는 전체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이두매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특별히 유대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관사를 붙여 유대지방이라고 한 것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당시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서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마케도니아 와 고린도 교회가 있는 아가야 지방 교회들의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달하려던 계획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걷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들도 역시 어려움에 처한 교회 지도자들을 불쌍히 여겨 함께 돕자는 것이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나누어 주려는 것이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려는 것이다.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성장한 뒤에는 기쁨으로 어려움을 당한 형제자매를 돕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은혜를 나누는 것이다.
말씀으로 은혜 받는 것만으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머리로만 알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로 깨달은 기쁨에서 멈추는 것은 단순히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다. 놀랍고 신기한 것을 깨달아 아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학문을 연구할 때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때 그 기쁨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 영적 유익은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확정되고 증폭됩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 이다. 머리로만 성경공부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지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다. 마치 골프나 야구를 머리로만 익히는 것과도 같다. 물론 책을 보고 얻을 정보도 있겠지만 일단 머리로 알았으면 몸으로 움직여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영적인 유익을 말씀으로 받았으면 헌금을 드림으로 훈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인 유익인 은혜를 나누어주고 또 그 은혜의 결실을 받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돕게 하려는 것이다.
17절에는 계획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오는데 15절에서 마음 먹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개역은 15절에 나오는 계획이라는 말을 경영하였다는 말로 번역하여 16절 끝에 두었다. 이런 계획이란 수정된 방문 일정으로 고린도에 두 번 방문하는 계획이다. 여행계획을 이렇게 세웠다가 수정한 것이 변덕스러운 일이냐고 질문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라는 뜻으로 쓰던 말이다.
변덕스러운 일이라는 말에 정관사가 붙은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실제로 던진 특정 비난을 가리킨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여행 계획을 바꾼 것에 대해 변덕스럽다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비난했다는 뜻이다. 변덕스러운 일이겠느냐고 물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고 반대로 신실하다는 뜻이다.
여행일정은 바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성도들이 깨닫고 몸으로 실천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뜻에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으로 계획 세우길 “아니오 아니오” 하면서도 말로만 “예 예” 하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이란 자기 생각을 말한다. 바울이 자기 마음대로 안간다고 이미 정해놓고 거짓말로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예 예 아니오 아니오는 마태복음 5:37절에서 나온 것이다. 야고보서 5:12절에서 야고보도 예수님 말씀을 인용했다. 고린도 교회의 바울의 대적자들도 예수님 말씀을 인용하며 실제로는 "아니오 아니오"라고 계획을 세워놓고 말로만 "예 예" 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답변이라는 의미이다.
바울이 여행계획을 이렇게 세웠지만 실행하지 못한 것 같다. 2:1절에 보면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하기 때문에 앞일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의 목표는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계획을 수정한 것이지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서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