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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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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1:12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온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한 것을 자랑한다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9. 11.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1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1:12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 양심의 증언인데 우리가 몸에 배어있는 삶의 습관으로 보여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고 세상의 지혜인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행했다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큰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주셨고 앞으로도 건져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데 여러분도 함께 기도로 협력해 주시면 많은 사람의 기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왜 감사를 드리게 되는지 이유를 설명한 내용인데 먼저 바울 일행이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도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왜냐하면을 이해하려면 앞에서 나눈 말씀을 되새겨봐야 한다. 고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바울을 보며 고린도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사도가 아닌 분명한 증거라고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통해서 위로를 경험했다며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보라고 자랑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에 바로 다음에 "우리의 자랑은 이것이다" 라는 말로 이어간다. 여기서 자랑은 행위가 아니라 자랑의 내용이다. 11절에서 은총이란 말은 선물이란 뜻이다. 모두가 함께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 뒤에 12절에서 왜냐하면 우리의 자랑은 이것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선물 때문에 하나님께는 감사를 드리는 것이지만 고린도 성도들에게는 자랑을 하며 너희도 이런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라는 것이다.

그 자랑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양심의 증언" 이라는 말로 보충해서 설명한다. 그리스어에서 양심이라는 말은 함께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누가 가르쳐줘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저절로 함께 알고 있는 지식이 바로 그리스어의 양심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뜻인 것이다. 이 말은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는 도덕적인 잘못을 스스로 고발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런데 바울에게서 양심이란 그런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비추어 보는 내적 판단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비추어보면 저절로 아는 것이 바울이 말하는 양심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치신 것도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참 뜻은 하나님 앞에서 판단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문자적인 의미만 지키면서 지켰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양심은 바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로 하는 것이 바로 양심의 증언이다.

첫번째 자랑거리는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는 것이다. 12절은 원문에서 “이것이 우리의 자랑거리이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바울 일행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는 것” 이라고 덧붙여서 설명한다. 증언이라는 말은 자신이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심이 증언한다고 했으니 말로만 하는 증언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나오는 진심으로 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우리의 양심으로 증언하는 것은 12절 중간에 나온 두가지 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성경번역마다 다르게 되어 있다. 새번역에는 “순박함과 진실함”이라고 했는데 개역에는 “거룩함과 진실함”이라고 했다. 영어성경도 ESV, KJV, NJB, NLT는 새번역과 같이 simplicity 라고 번역했고 NASB, NIV, RSV는 개역과 같이 holiness는 라고 번역했다.

왜 이처럼 다르게 번역했을까? 이는 두 단어 중 뒤의 “진실함”은 모든 번역이 똑같다. 문제는 앞에 있는 단어가 거룩함이냐 순박함이냐 하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면 holiness냐 simplicity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고대의 사본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 사본인 2세기 사본부터 4세기 사본 3가지는 모두 holiness 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simplicity 라고 기록한 후대의 사본들이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들에는 holiness라고 기록되어 있는데도 많은 학자들은 simplicity 가 맞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리스어 원어의 대문자를 봐야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Simplicity 는 AΠLOTHTI(aploteti) 고 holiness는 ΑΓIOTHTI (hagioteti)이다. 영어의 L에 해당하는 lambda 만 빼면 모양이 아주 비슷한다. 그래서 원래는 simplicity 가 맞는데 누군가가 실수로 lambda를 빠뜨리고 썼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사본인 P46을 필사하는 사람이 그것을 잘못읽고 써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필사자가 글을 알지 못하고 베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고대의 사본 필사자들은 성경 학자들이지 필경사가 아니다. 사본들의 증거는 분명히 거룩함이 압도적인데도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simplicity가 맞다는 것이 대세이다.

새번역처럼 순박함이 맞다고 주장하는 이유중 하나는 바울이 순박함이란 말을 자주 썼기 때문이다. 바울 서신에 5번이나 나온다. 로마서 12:8과 고린도후서 9:13은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너그럽게 베푼다는 뜻으로 썼다. 에베소 6:5절과 골로새서 3:22은 눈가림만 하지 말고 성실하게 하라는데 썼다. 그렇다면 이 말은 남 볼 때만 잘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건 안보건 항상 성실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들 앞에 잘 보이려고 헌금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simplicity가 아니다. 그것은 계산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건 안보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같은 태도로 헌금하거나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것은 잘보이려고 아부하지 않고 항상 같은 태도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또 진실함이란 고린도후서 2:17에 나온다. 2:14-16에서 바울 일행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구원얻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냄새지만 망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냄새라고 말한다. 그 뒤에 이어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말씀 팔아먹는 장삿꾼이 아니라 순전함으로 전한다 했다. 순전함이 바로 진실함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바울은 같은 말씀을 전하지만 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바울이 전하는 말을 죽음의 냄새로 맡고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진실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다보면 순박함과 진실함 뒤에 붙어있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곤란해진다. 진실함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순박함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ESV는 하나님이란 말을 진실함에다만 붙여서 godly sincerity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는 두가지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의미이고 신자로서 도덕적인 면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자신의 인격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자랑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자랑한다는 말이 주로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에서 나오는데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고난과 진리를 자랑했지 한번도 도덕적인 면을 자랑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거룩함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아봐야 한다. 많은 학자들이 거룩함이란 단어를 바울이 쓴 적이 없기에 오래된 사본들에 분명한 증거가 있어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순박함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바울서신에는 없고 히브리서 12:10에만 나온다. 하나님의 징계를 참고 견디는 것은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바울이 말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통하는 것이다.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이 결국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되니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룩함은 진실함과 짝을 이루어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 된다. 진실함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을 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냄새이기에 싫어하고 핍박해도 항상 증거한 것이다.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이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이요 누가 뭐라고 비난하며 핍박해도 항상 같은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진실함이다. 더구나 이렇게 된다면 거룩함과 진실함 뒤에 나오는 하나님이란 말도 두 단어 모두를 자세히 해주는 것이 되어 자연스럽게 해석이 된다. 고난을 참고 견디는 거룩함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항상 진실하게 증거하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룩함과 진실함이다.

거룩함과 진실함이라는 말이 불분명하기에 바울은 다시 설명한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지혜라는 말은 개역성경처럼 육체의 지혜이다. 육체의 지혜와 하나님의 은혜가 서로 대조되는 것이다. 육체는 주로 구약의 율법을 말할 때 썼고 은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말할 때 썼다. 바울은 자신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수많은 율법에 관한 지식과 그 밖의 모든 지식들을 육체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룩함과 진실함은 그러한 육체적 지혜인 율법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란 11절의 은총이라고 번역된 단어와 어원이 같다. 이는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선물 즉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한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뒤 세상의 지혜를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행했다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했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 라고 했다. 특별히 고린도 교인들을 상대로 처신할 때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개역은 세상에서와 행한다는 말을 멀리 떼어 놓았지만 원어에서는 함께 연결되어있는 말이다. 행한다 처신한다는 말은 반복적으로 습관화된 행동을 말한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 그렇게 율법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습관적으로 행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성도는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은 가슴으로 느끼고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머리로만 은혜를 찾고 세상에 나가서 함부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면 아무 소용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며 살아야하는 것이다. 바울이 세상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행했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우리도 그걸 자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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