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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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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1:10-11

기도로 협력해 달라

2026. 9. 10.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1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1:10-11 하나님께서는 큰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주셨고 앞으로도 건져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데 여러분도 함께 기도로 협력해 주시면 많은 사람의 기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다.

이전 말씀은 감당할 수 없는 환난으로 인해 살 수 있는 탈출구가 없던 때에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죽을 것이라 응답해 주신 것은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죽음의 고비에서 건져주셨고 앞으로도 건져주실 것이라며 기도로 협력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10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9절 끝부분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한 종속절이다. 그분은 바로 큰 죽음에서 건지셨고 또한 앞으로도 건지실 것이라는 것이다. 큰 죽음이 아니라 큰 죽음들이라는 복수일 것이라며 크다는 말은 크기가 엄청난 것을 나타내기에 죽음의 위기들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CNTTS의 사본 자료들을 보면 2세기 사본인 P46하나와 1739라는 10세기 사본의 여백에 수정되고 또 수정된 내용에 복수로 기록된 것 뿐이다. 4-5세기 대문자 사본들을 비롯해서 대다수의 사본들은 모두 다 단수이다.

오늘날 현대인의 관점에서 문맥상 큰 죽음이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복수라고 말하기 보다는 왜 단수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8-9절에서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고 그 죽음의 위협이 얼마나 컸는지 살 소망마저 잃었다고 했다. 따라서 바울은 그러한 큰 환난에서 건져주신 것은 큰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셨다고 말한 것이다.

칠십인역 구약성서 욥기 33:30절에서도 내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건지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이 구절의 히브리어를 보면 그 영혼을 구덩이로부터 돌리셨다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어에서 영혼으로 번역한 말은 영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 전체를 나타내는 말이다. 히브리인들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 깊은 구덩이로 이해했기에 구덩이에 이미 빠진 것을 되돌리셔서 살게 하셨다는 뜻이다. 그렇게 엄청난 죽음에서 한번 건져주셨고 앞으로도 계속 건져주실 것을 확신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건져주신다는 말이 무려 세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 사실 이러한 중복은 그리스어의 표현으로 보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이를 말로 불러주던 것을 받아썼기에 자연스럽게 반복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건져주셨다는 말은 욥기 33:30절의 히브리어 표현에서 구덩이로부터 되돌리셨다는 표현과 말은 다르지만 같은 그림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죽음의 위기에서 구조해 주셨고 앞으로도 구조해 주신다는 희망을 주셨다는 뜻이다.

소망(새번역: 희망)을 주셨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에 구조해 주실 소망을 완전하게 주셨다는 뜻이다. 이는 과거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완전히 두었고 지금도 계속 그 소망 안에 계속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 큰 죽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건져주실 소망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건져주시는 것과 같은 것이고 악당들에게 사로잡혀 처형되기 직전에 악당들을 물리치고 구해주시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해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어려움에서도 우리를 구해주신 분이고 앞으로도 구해주실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만 소망이 있다. 세상 다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길이 전혀 없다. 그래서 바울은 전에 자신만 의지하던 것을 버리고 하나님 만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바울이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역시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만 의지하고 있는 나를 보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해 놓고는 실제로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방법을 찾아 해결하려고 한다면 나를 보라고 말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는 말은 쓸데없는 말이 된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들을 보라고 한 것이다.

11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10절에 딸린 절이다. 원어는 함께 돕는다는 말로 시작하는데 10절에 나오는 희망한다 또는 소망한다는 말로 번역되는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절이다. 이 해석은 둘로 갈린다. 어떤 이들은 함께 돕고 있다는 말이 조건이 아니라 여러분도 이미 동시에 기도로 돕고 있으므로 그분이 우리를 구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다수는 고린도 교인들이 기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여러분이 기도로 협력해주신다면 이라는 조건으로 설명한다. 기도를 요청한다는 권유로 해석하는 것도 결국 고린도 교인들은 기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어지는 문맥을 봐야 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미래에 일어날 결과나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얼굴로부터 우리를 향한 은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는 내용은 바울이 앞으로 기도해 준다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바울 일행을 구원하시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함께 협력해 달라는 말은 앞으로 기도로 협력해준다면 은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11절에는 많은 사람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먼저 나온 말은 많은 얼굴로부터 라는 뜻이다. 이는 중보기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말한다. 은사나 은총이라고 한글성경에 번역된 말은 선물이란 뜻이다. 따라서 먼저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어려움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비추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얼굴들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따라서 중보기도를 통해서 어려움 당한 자가 받는 선물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체험하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많은 사람”이란 말은 수단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많은 기도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감사가 주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앞에서는 영광의 빛을 선물로 받았는데 두번째는 기도의 내용이다. 기도의 내용 자체를 통해서는 응답을 받고 바울 일행 때문에 하나님께서 감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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