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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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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1:8-9

환난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9. 9.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1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1:8-9 감당할 수 없는 환난으로 인해 살 수 있는 탈출구가 없던 때에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죽을 것이라 응답해 주신 것은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전 말씀은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여러분들도 같은 고난을 견디어내며 하나님의 위로룰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고 이미 고난에 동참하고 있으니 위로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환난을 당해 살 희망 마저 잃을 지경이었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라 느꼈지만 이는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정통 보수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신자들은 질병과 가난 고통 불행등에도 영적인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만약 신자가 질병과 가난과 고통 불행 등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사장 같은 권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대적자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겪은 엄청난 환난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울이 환난을 물리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진짜 사도가 아니라고 공격했을 것이다.

앞부분에서는 이러한 대적들에게 바울은 지난 주 말씀에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난도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것이고 위로도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 한 것다. 바울 일행이 겪는 고난과 같은 고난을 고린도 성도들도 견디어내면서 같은 위로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은 고난과 위로의 공동상속자라는 것을 알고 소망이 확실해졌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들의 고난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위로를 경험하게 해주신다고 대답한 것이다.

바울 일행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과 함께 하시지 않는 증거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는 내용이 계속 이어진다. 원어에서는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원문에서 8절은 왜냐하면 너희가 모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로 시작한다. 바울이 매우 중요한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고 할 때 흔히 쓰던 공식이다. 고린도전서 10:1에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다가 광야에서 모두 멸망했다는 것을 모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했다. 또 고린도전서 12:1에서는 신령한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절에서도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관해 모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했다. 따라서 이 성도가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진리라는 것이다.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겪은 환난의 의미를 아는 것은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에 관해 분명한 확신을 갖는 것 만큼 성도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아시아에서 겪은 환난은 무엇을 뜻했을까? 어떤 이들은 심각한 질병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병이라면 바울 한 사람의 일인데 고난 받는 이가 우리라고 했기에 병으로 보기 어렵다. 또 질병이라면 그리스도의 고난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기에 가능성이 적다. 다수는 데메드리오 사건은 죽음의 위협은 아니었기에 연결되지 않는다며 에베소나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가는 여정 중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유대인 군중에게 찢겨 죽을 뻔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는 오늘날 우리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바울과 바울 일행이 함께 죽을 위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분명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만큼 유명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대적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바울을 조롱했을 것이다. “저것봐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라면 왜 저런 환난을 기도로 물리치지 못하는가?”

이런 조롱에 대해 바울은 “너희가 모르길 원하지 않는다” 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 환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능력에 지나도록 짓눌렸다고 했다. 원어는 측량 불가할 정도라는 말과 감당할 능력을 훨씬 넘어서 라는 비슷한 표현이 반복되어 있다. 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무게에 짓눌렸다는 뜻이다. 이는 엄청난 무게의 짐에 짓눌려 있는 장면이다.

운동에 비유한다면 본인이 하는 중량 스쿼트에 비유할 수 있겠다. 안전을 위해 스미스 머쉰에서 스쿼트를 한다. 200 파운드를 어깨에 매고 20x5회를 다치지 않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이상 무게는 다칠까봐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만약 250 파운드라면 억지로 해보겠지만 400 파운드를 어깨에 걸어 준다면 그러한 것이 바로 감당할 능력을 훨씬 넘은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측량 불가할 정도는 아니다. 측량 불가할 정도로 감당할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바울의 표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어서 그 결과 삶 조차도 포기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기했다는 말은 출구가 완전히 막혀 탈출할 길어 전혀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살아날 길이 전혀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13절에서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했는데 자신은 측량이 불가능할 정도이고 능력을 넘어서는 환난이었을 뿐 아니라 살아날 길도 완전히 막혀 있었다는 것이다.

9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수사학적으로 상승적인 강조로 볼 수 있다.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게다가”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개역은 "우리 마음에" 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우리는… 느꼈습니다"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우리 자신 안에서 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라는 뜻의 아주 강한 표현이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이미 사형선고를 완전히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수는 여기서 사형선고라는 말이 어원상 대답 또는 응답이라는 뜻이고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에서는 법정 판결이 아니라 황제나 총독에게 보낸 공식 청원에 대한 답변이나 응답을 뜻하는 행정용어였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청원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결국 죽게 될 것이라는 응답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파피루스 문헌들을 보면 이 단어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선의적 결정과 연관된 말이다. 사절단이 황제에게 청원을 했을 때 황제가 답변해 준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바울은 단순히 죽음이 확정된 것을 사형선고를 완전히 받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죽을 것이라는 응답을 해 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같이 바울은 죽음의 문턱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감당할 수도 없을만큼 받았던 엄청난 환난을 보라는 것이다. 바울은 환난이 하나님의 사도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받은 환난을 잘 보고 똑바로 알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환난 가운데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도라는 분명한 증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도 복음 전파하다가 죽을 것이라는 응답을 주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환난을 자랑하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죽을 것이라는 응답을 주신 결과가 이어지는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 일행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을 경험한 것이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했다는 뜻이다. 의지한다는 말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감당할 수 없는 환난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뒤부터 자신들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도 전에는 자신의 힘을 의지했다. 최고 명문학교를 다닌 사람이고 율법적으로도 최고인 사람이고 혈통으로도 최고의 가문이었고 또 사회적 신분도 최고였다. 하지만 바울이 엄청난 환난을 겪고 나서 자신의 힘으로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탈출구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뒤부터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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