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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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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전서 15:47-49

하늘에 속한 사람의 형상을 입자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8. 19.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5:47-49 첫 사람은 흙으로부터 왔고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온 것처럼 첫 사람에 속한 사람들도 썩어질 존재로 되었지만 둘째 사람에 속한 사람들은 영원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과거에 흙에 속한 사람을 입은 것 같이 이제는 하늘에 속한 사람의 형상을 입도록 하자.

이전 말씀에서 첫 사람 아담은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고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었으며 자연적인 몸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신령한 몸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흙으로 빚은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을 비교하며 우리는 하늘에 속한 그 분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 말하는 내용이다.

47절은 첫 사람은 흙으로부터, 두번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라는 대조로 되어 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부터 지어졌다는 것은 근원이 흙이라는 뜻이다. 죽은 뒤 다시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성질을 말한 것이다. 이와 대조가 되는 두번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은 그 근원이 하늘이라는 뜻이다. 이는 흙으로 돌아가는 성질을 지닌 육체와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육체라는 뜻이다.

48절은 흙으로 된 그 사람처럼 흙으로 되어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반면에 하늘에 속한 그 사람처럼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다 그렇다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부활시에 어떤 몸이 주어지는지를 대조한 것이다. 흙으로 지음 받은 아담처럼 모든 인류는 본래 다 흙으로 되어있어 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원한 몸을 입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 흙에서 난 존재이고 다 썩어 흙이 될 사람들이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되고 영원한 몸을 장차 입게 된다는 것이다.

49절은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처럼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다는 말은 이미 우리는 과거에 한번 입었다는 뜻이다. 반면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는 것은 대부분 영어 번역들이나 한글 번역들 모두 미래에 입을 것으로 번역했다. 새번역도 미래로 번역하면서 각주에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입읍시다" 라고 되어 있다고 표시해 놓았다.

입을 것이라는 단어에 사본 상의 차이가 있다. 미래에 입을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기록한 사본은 Codex Vaticanus를 비롯한 소수의 후기 소문자들 사본 뿐이다. 가장 오래된 P46을 비롯해서 대다수의 중요한 초기 대문자 사본들과 후기 소문자 사본들은 모두 다 가정법으로 기록하고 있다. 차이는 오메가와 오미크론의 차이인데 발음상 거의 같기에 필사과정에서 혼동했을 것이라며 사본의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미래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초기 사본을 기록한 사람들은 실제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학자들이기에 미래와 가정법을 혼동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BS 원어성경 위원회가 미래형을 택한 것은 문맥 때문이다. 문맥이 권면하는 내용이 아니고 가르치는 내용이기에 사본의 증거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미래형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사본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 중 하나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이해하기 쉬운 것이 나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원문이라는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 것을 이해가 되는 것으로 고치는 경우는 있지만 반대로 이해가 잘 되는 것을 이해가 안되는 말로 고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사본의 증거도 압도적이기에 가정법이 원문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래형이 아니라 가정법을 썼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입도록 하자는 가정법으로 읽는다면 하늘의 형상을 입도록 하자는 권면이 된다. 가정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형상을 입도록 하자고 한다면 인간의 노력으로 영광스러운 몸을 얻는 것처럼 들리기에 바울의 신학과 완전히 어긋난다며 윤리적 권면에 관심을 갖은 필사자들에 의해 행해진 초기의 원문 훼손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하늘의 형상을 입도록 하자는 것이 원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활의 몸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자동적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신자의 참여와 책임이 포함된 과정이라며 가정법으로 읽어도 윤리적 명령이 아니라 종말론적 참여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UBS 원어성경 위원회가 미래형을 선택한 것은 더 나은 사본 비평 감각을 포기한 것이다.

만약 가정법으로 읽는다 해도 영광스러운 몸을 우리가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58절에서 이 부분을 정리하면서 권면한 것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한 것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던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교회 일부 교인들에게 속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윤리적 명령이라기 보다는 영원한 몸을 입을 것을 소망하며 사는 삶에 책임있는 참여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어지는 50절에서도 썩을 것인 이 세상의 영광을 옷처럼 입고 산다면 썩지 않을 영원한 유산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장차 입을 영원한 몸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옷처럼 입고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신학으로 본문을 사정없이 난도질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대로 읽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읽는 지름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신학으로 점검해 보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잘라버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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