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20-21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부활도 들어온다.
이전 말씀은 그러면 또한 이미 죽은 신자들은 완전히 멸망한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하는 것이 이 세상 뿐이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잠자는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부활이 들어왔다는 내용이다.
20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이제는"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러한 표현은 지금이라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그러나 실제로는" 이라는 강한 대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앞에서 가정한 음울한 그림들과 대조되는 기쁨의 외침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말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이라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표현은 다르지만 역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부활이 없다면 이라는 가정과 대조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이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그러나 사실은" 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다. 영어의 NLT나 한글 번역들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번역했다. 후기 사본들 중에도 되셨다는 말이 들어있는 사본들이 다수 있다. 그러나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들에는 되셨다는 말이 없다. 사본 상의 증거로는 되셨다는 말이 없는 것이 원문임에 확실하다. 문장이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후기 필사자들이 되셨다는 말을 삽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것과 동격처리를 해서 번역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뜻이다.
첫 열매라는 말은 구약에서 나온 말이다. 구약의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리는 처음 수확한 열매이다. 이는 나머지 수확 전체를 보증하는 표시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시간적으로 가장 먼저 열린 열매와 같이 첫번째 부활이고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을 대표하는 것이며 장차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증표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첫 열매는 먼저 열린 열매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열릴 모든 열매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라면 우리도 장차 반드시 부활한다는 뜻이다.
21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온다는 내용이다. 이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병행시키며 대조하는 것이다. 아담은 옛 창조의 대표인데 첫번째 창조로 창조된 모든 사람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새 창조의 대표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며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현대 서구 사회에서 시작된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 때문에 모든 인류가 죽게 되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인류는 공동체 중심이다. 현대 서구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졌지만 성경이 기록된 고대 유대와 지중해 세계는 공동체 중심의 문화였다. 서구인들은 본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본래 인류는 모두 공동체 중심이었다. 인류는 창조된 존재라는 하나의 꾸러미 속에 함께 묶여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서로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죄와 타락을 함께 나누는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예수님 이전에도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경우는 있었지만 그들은 다시 죽었고 아무도 계속 살아있는 존재로 회복된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정복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결코 다시 죽지 않으신 최초의 사람이다. 그렇기에 예수님만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