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2-13 바울은 만약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면 어째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말하느냐며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결코 살아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전 말씀은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하나님 은혜는 헛되지 않았고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이것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도들이 같은 복음을 전파했고 여러분은 모두 같은 복음을 믿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어찌하여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며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12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11절과 연결된다. 11절에서는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나 모두 이것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란 15:1-8절에 나온 부활의 복음이다. 원어는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면" 이라는 말로 11절과 이어간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앞에서 말한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복음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면 너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부활이 없다라고 하느냐 라는 것이다.
살아나셨다는 말이 완료형인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지금도 계속 살아계신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살아나셨다고 전파되고 있다는 것은 잠시 살아나셨다가 다시 죽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살아계신다는 뜻이다. 그것이 완전히 살아나셨다는 완료형의 의미이다.
바울은 이어서 그런데 어떻게 너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부활이 없다라는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복음은 받아들이고 믿으면서 어떻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질문은 만약 죽은 신자들의 부활이 불가능하다면 이미 일어난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뜻이다. 바울의 핵심 논증은 죽은 신자들의 부활이 불가능하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백 명이 넘는 사람에게 이미 나타나셨다고 앞에서 말했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상대하는 고린도 교인들은 사두개적 편견을 가진 유대인들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방인들이다. 물질인 몸은 악하고 죽음은 영혼의 해방이며 다시 몸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거나 에피쿠로스 학파적 물질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죽으면 그 존재가 완전히 끝난다고 믿었던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정하고 믿으면서 자신들 가운데 있는 믿는 자들이 죽은 경우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13-18은 두개의 삼단논법으로 되어 있다. 그 중 첫번째 삼단논법은 13-15절에 나온다. 여기서 첫번째 대전제는 13절이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결코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오백명이 넘는 증인들이 있고 그 중 일부만 죽었다고 했기에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 자체가 죽은 자의 부활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했다는 말에서 부정어를 not even이 아니라 neither로 번역해야 한다. 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not even으로 번역했는데 이렇게 번역하면 그리스도는 특별한 예외인데 그 예외 조차도 부정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Neither로 번역하면 죽은 자의 부활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도 역시 부활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만약 "not even"으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일반적인 부활 법칙의 예외적 사례처럼 들리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정하면서 다른 죽은 신자들의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믿은 것은 로마황제들이 죽은 뒤 신격화되는 것처럼 그리스도 역시 죽음 후에 신적인 지위로 올려진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당시 로마 황제들이 죽으면 신전에 신으로 모셔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신격화된 것이 아니라 완전한 부활이고 지금도 살아계시는 영원한 부활이다. 이는 우리도 역시 그렇게 영원한 몸을 입고 부활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