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5-7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수많은 증인들에게 나타나셨다.
이전 말씀은 나도 전해 받은 것을 전해주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것과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신 것을 전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수많은 증인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5절은 그리고 게바에게 나타나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나타났다는 말은 항상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을 뜻한다. 수동태이기에 보여졌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보였다는 뜻이다. 복음서에 보면 맨 처음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바울은 3절에서 말한 것처럼 전해 받은 공식적인 전승을 따라 게바에게 맨 처음 나타나신 것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의 증언은 당시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관습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 열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다. 당시에 가룟 유다는 사망했고 도마는 없었지만 열 둘이라는 말은 사도들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명칭이었기에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열 둘에게 보이셨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에게 보이셨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실제 숫자와 상관없이 사도들 전체를 가리키는 고정된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6절은 그 다음에 한 번에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보이셨다고 말한다. 한 번에 라는 말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은 환상이나 주관적인 체험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경험한 객관적인 나타나심이라는 것이다. 그런 내용은 복음서에 직접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대부분 마태복음 28:16-20절에 나오는 갈릴리에서 대규모의 모임과 연결해서 이해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였다는 것은 실제로 세어 보았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 많은 수가 아직도 살아있고 어떤 이들은 잠들었다는 것이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던 53-55년 경까지 대부분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 일부만이 잠들었다는 말은 죽었다는 뜻이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고 집단적인 착각이나 환상일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많은 목격자들이 살아있었기에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 7절에는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다고 했다. 여기서 야고보는 확실하게 주님의 형제 야고보이다. 갈라디아서 2:9절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라고 되어있는 인물로 열 두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지상사역 기간에는 믿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것은 바울의 회심과 비슷한 급격한 전환일 것이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셨기에 야고보는 그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모든 사도들이란 모든 사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도란 열 두 제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지상 사역기간 예수님으로부터 배웠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땅 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명령을 직접 받은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야고보는 예수님과 함께 자란 사람이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끝까지 믿지 않았던 사람이고 끝까지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했던 사람이다. 야고보에게 나타나셨고 야고보는 바울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지도자였기에 한 말이다. 만약 오늘날 우리라면 함께 자란 형이나 오빠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이런 야고보가 완전히 변화되어 야고보서를 남겼고 복음을 전하다가 62년경에 순교까지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렇게 믿지 못하고 사역에 반대하던 그가 변해서 순교까지 했는가? 그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보통 사도라 할 때 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을 일컫는 말인데 열 두 제자는 베드로 다음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열 두 제자들일 가능성은 없다. 이러한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이해로 1세기 단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본래 사도란 단어는 멀리 라는 뜻을 가진 말과 보낸다는 뜻을 가진 말을 합성한 단어로 멀리 보낸다는 뜻이다. 왕이 외교관을 멀리 다른 나라에 파견하듯 그렇게 파견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이 사도들이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열 두 사도 이외에 부활한 주님을 만난 사람들 중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고 먼 나라에 가서 복음 전하던 사람들일 것이다. 로마서 16:7절에 보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며 그들은 사도들 가운데서 탁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만났고 믿었다라고 했다. 이 구절을 보아서도 사도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면서 땅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사명을 먼 나라에 가서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것은 53-55년경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30-33년경 일 것이다. 약 20년쯤 뒤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이라크 전쟁은 2003년 3월 20일에 시작되었으니 26년이 지났다. 미국은 이라크로부터 원유 시장을 지키기 위해 50만명의 군대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보냈다.
만약 누군가가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적이 없고 그것은 다 미국이 조작한 것이며 미군을 사우디 아라비아에 파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보자. 아마 우리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그 때 군인으로서 이라크 전에 파병된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살아 있을 것이고 그들은 모두가 그 때 이라크 전에서 싸우던 군인이었다고 증언할 것이다.
바울이 최소한 516명 이상의 증인들을 거론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 있다고 증언한 것은 마치 오늘날 이라크전을 증언하는 것과도 같다. 아직도 그 증인들이 대부분 살아 있는 것처럼 바울 당시에도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던 증인들이 대부분 살아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증인들을 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