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39-40 예언하는 은사를 받기를 열망하고 방언하는 것을 막지 말아서 모든 것을 잘 차려 입은 모습처럼 적절하게 하고 하나님의 군대로서 질서있게 하라.
이전 말씀은 누구든지 자기가 예언자이거나 신령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든 내가 써 보낸 글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만약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도 인정 받지 못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언하기를 추구하고 방언을 막지 말며 모든 것을 적절하고 질서있게 하라 는 내용이다.
39절 첫부분에 있는 그러므로 라는 말은 바울이 12-14장에서 쓴 글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과 연결이 된다. 또 다시 "형제들아!" 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말한다. 새번역은 열심히 구하라고 번역하고 개역은 사모하라로 번역된 말은 본래 끓어오른다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이 감정적 정신적 영역으로 비유되면서 어떤 일에 뜨거운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14:1절에서도 같은 말이 나오는데 사랑은 쫓아가라고 했지만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받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키워갈 뿐이다. 따라서 새번역이 열심히 구하라고 번역한 것은 오해하기 쉬운 번역이다. 받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라는 뜻이지 어떻게 받을지 열심히 구하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1절에서는 신령한 은사를 열망하라고 말한 뒤 특별히 예언하기를 열망하라고 했다. 그런데 39절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예언하기를 열망하라고 했다. 가장 큰 은사인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은 우리가 열심히 잡으려고 애를 쓰면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언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열망할 뿐인 것이다. 14:3절을 보면 예언은 권면하고 덕을 세우고 위로를 한다고 했기에 이는 목회적 권고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권고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열망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방언도 금하지 말라고 했다. 앞에서 말한대로 통역을 할 수 있다면 방언도 괜찮다는 것이다.
40절은 그러나 모든 것을 적절하게 하라고 했다. 또 질서 있게 하라고 했다. 여기서 하라는 말은 하도록 시키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적절하게 하도록 하게 하고 질서있게 하게 하라는 것이다. 적절하게 라는 말은 대중 앞에서 드러낼 수 있는 보기 좋은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로마서 13:13절에서는 낮에와 같이 단정하라는 말에서 나온 말과 같은 말이다. 로마서의 문맥에서 그 반대는 밤에 술에 취해서 옷을 벗어버리고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다.
그 반대말은 드러내기 부끄러운 것이다. 12:23절에서는 아름답지 못한 지체라는 말은 생식기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그 반대는 아름다운 것을 얻는다고 했는데 바로 아름다운 것을 얻는다는 말이 바로 적절하다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그래서 14:23절에서는 모두가 방언을 말하고 있으면 무지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보고서 미쳤다고 한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만약 무질서하게 방언을 한다면 생식기를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러운 것이고 질서있게 두 세사람이 예언을 하는 것은 잘 차려입은 것처럼 적절한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질서 있게 하라고 한 것인데 원어의 본래 의미는 순서를 따라 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군대가 계급에 따라 질서있게 도열해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모두가 총독이 아니고 모두가 호민관이나 천부장이 아니고 모두가 백부장이 아닌 것과 같다. 군대는 계급에 따라 상하가 결정되지만 하나님의 군대는 서로 다른 은사를 갖고 있지만 계급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각자 받은 은사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군대로 질서있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6세기 사본인 Claromontanus와 11세기 대문자 사본 두개에는 34-35절이 40절 이후에 있다. 34-35절을 빼면 전후 관계가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잘못되었다 생각하고 맨 뒤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26-36절은 무질서하게 방언을 하고 아무나 나서서 예언을 하고 또 고린도 교회 귀족층으로 높은 교육을 받은 여자들이 예언자들의 말을 끊고 따지듯 질문하고 가르치려 하는 등 무질서한 모습을 나열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마치 생식기를 드러내는 듯한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40절에서 잘 차려입은 것처럼 하고 질서있게 하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