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32-33 우상들의 무당들과는 달리 예언하는 사람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우상들처럼 무질서의 하나님의 아니고 평화의 하나님이시니 모든 성도들의 교회에서와 같이 그렇게 질서있게 하라.
이전 말씀에서 예언하는 사람은 둘이나 셋이 말하고 다른 이들은 가짜 예언을 분별하고 걸러내도록 할 것이며 앉아 있는 사람에게 계시가 내리거든 먼저 말하던 사람은 멈추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여 한 사람씩 말하게 하여 모두가 배우고 권면을 받게 하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언하는 사람의 영은 사람의 통제를 받는다며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니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그렇게 하라는 내용이다.
32절은 예언하는 사람의 영은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29절에서 한 사람이 예언을 하면 다른 이들은 그 예언이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온 말씀인지 아닌지 분별하라고 한 것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예언하는 사람의 예언을 듣고 분별하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언자 스스로도 분별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언은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언자는 황홀경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통제 가능한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복종한다는 말은 예언자 자신이 복종하는데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뜻이고 강제로 복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주석가들은 이 말의 의미가 예언자는 성령이 시키는대로 자동으로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주체라고 말한다. 반대로 바울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의 신들의 무당들은 악한 영에 사로잡혀 그 영이 떠날 때까지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영적 황홀경에 따라 예언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전하는 자의 마음대로 그 뜻에 순종하여 전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것이다.
3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무질서나 어지러움으로 번역한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아래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래에 둔다는 것은 권위에 따르는 질서있는 모습이다. 그 말 앞에 부정을 뜻하는 말을 붙여서 권위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난장판을 벌이는 모습이다. 그 반대말인 평화의 하나님은 그러한 난장판이 통제되고 평화스럽게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무질서나 어지러움은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도 모르는 방언을 하면서 자신들의 영적 권위를 내세우던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두 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질서있게 예언하라고 한 것이 바로 평화의 하나님을 따라 예언하는 것이다.
33절 끝부분은 모든 성도들의 교회에서와 같이 라는 말이 붙어있다. 이 구절이 33절 끝부분에 연결되는 말인지 34절의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과 연결되는 말인지는 논란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필자가 온 우주에서 가장 깊게 연구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약성서 사본을 연구하는 것이 필자의 전공이다. 게다가 필자는 모든 영어 번역들과 신약성서 사본 수백개를 다 뒤져보고 모든 주석과 논문들을 다 찾아보았다.
개역은 이 내용을 34절로 옮겨서 번역했고 새번역은 동그라미를 표시해서 이 구절이 34절과 연결되는 것으로 번역한 것이다. 영어 번역에서도 KJV을 비롯한 1901년 이전에 번역된 번역들은 예외없이 이 부분을 33절 끝부분에 연결해서 번역했다. 그러나 1901년에 번역된 ASV에서 처음으로 이 부분을 34절에 연결해서 번역한 것이 나타났다. 34절과 연결해서 1952년에 번역된 RSV를 신호탄으로 그 이후에 번역된 영어 번역들은 NASB 와 NKJV와 Today's NIV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34절에 붙여 모든 교회들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번역했다.
그리스어 원어 성경들도 1872년 Tischendorf 판부터 이 부분을 14절로 붙이기 시작했다. 1881년 Westcott & Hort판에서는 다시 33절로 붙여 놓았지만 1913년 Von Soden판과 현재 사용하는 UBS와 NA27은 다시 34절로 붙여 놓았다. 영어 번역과 그리스어 원어 성경판들 모두 19세기 말부터 이 구절을 의도적으로 34절에 붙여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들은 모든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 사본들을 보면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사본들은 예외없이 이 부분을 33절 끝에 두고 34절부터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후기 소문자 사본들 역시 13세기 소문자 사본인 1404 하나만 이 부분을 34절 첫부분으로 연결하여 34절을 시작하는 것으로 기록했다. 모든 초기 대문자 사본들과 CNTTS에 보관되어 있는 200개가 넘는 모든 소문자 사본들을 다 뒤져보았지만 1404 하나만 분명하게 그렇게 표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19세기 말까지 교회는 거의 예외없이 모든 교회에서 이렇게 질서있게 두 세사람이 예언을 하라는 뜻으로 읽었다.
오늘날 주석가들은 역시 둘로 갈린다. 일부는 33절에 붙여서 해석한다. 그러나 필자가 찾아본 더 많은 수의 주석가들은 이 부분을 34절에 붙여서 해석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1872년 Tisendorf판 그리스어 성경을 시작으로 1901에 발간된 영어번역인 ASV에서부터 이렇게 이 부분을 34절에 붙이기 시작했을까? 오늘날 다수의 주석가들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을까?
그 때는 정확히 여성 해방운동의 시기와 맞물린다. 1848년 뉴욕에서 열린 "세네카 풀스 여성 권리 대회"에서 여성들도 동등한 인간이라며 참정권을 요구했다. 그 시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러한 여성들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영국은 1918년 여성에게 부분적으로 참정권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임금 차별과 낙태권 같은 여성 해방 운동이 1960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 이후 번역된 대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이러한 여성해방운동과 정확히 시기가 맞물린다.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자 교회는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라는 말을 여자들은 잠잠하라는 말과 연결하여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원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문맥은 방언을 할 때는 세 사람 이내에 통역을 할 때만 하고 예언을 할 때도 두 세사람이 하되 질서있게 순서대로 하라는 말을 한 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라며 모든 교회에서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이다. 이어지는 여자들은 잠잠하라는 말은 고린도 교회에서 상류층 귀족 계급의 여자들이 교회에서 예언을 하고 설교를 할 때 남자들처럼 머리에 쓰지 않고 해서 교회 질서를 어지럽혔던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바울 당시 귀족계급의 여자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머리에 쓰지 않고 대중들 앞에서 말하고 연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린도 교회만의 특정한 상황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모든 교회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법이라면 다른 서신서들에서도 반복되어 나왔을 것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들이 자신들이 누리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성경을 오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