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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고린도전서 › 14:19-21

Dawn Word

고린도전서 14:19-21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가르치라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7. 14.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4:19-21 바울은 방언으로 수 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 생각으로 다섯마디 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생각하는데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다른 혀와 다른 입술로 말할지라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전 말씀은 그대가 훌륭하게 감사를 드린다 해도 다른 사람을 세우지 못한다. 나도 여러분 가운데 누구보다 더 방언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일 만 마디방언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다섯마디 말을 교회에서 하길 원한다며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데는 어른이 되라며 주님께서는 방언으로 말해도 듣지 않는다고 하셨다는 것을 인용하는 내용이다.

19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18절과 연결이 된다. 바울도 누구보다 방언을 많이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라는 뜻이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 안에서 내 마음으로 다섯 마디를 말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바울이 교회 안에서 라는 말을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바울은 방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공적인 모임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그러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자신들의 영적은 은사를 자랑하는 것에 쓰였기 때문이다.

개역이나 개역개정은 네가 다섯마디를 말하는 것이 낫다고 번역했는데 원어는 바울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다섯마디는 어느 정도 뜻이 통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숫자라고 본다. 이어서 그 목적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라고 했다. 다섯 마디라는 말과 대조되는 말은 19절 마지막에 붙어있는 말은 방언 안에서 하는 일 만 마디라는 말이다. 일 만이라는 말은 주로 일 만이라는 숫자의 의미보다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목적은 교회 안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다섯마디 말을 하는 것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일 만 마디의 말보다 낫다는 것이다.

20절은 "형제들아!" 라고 다정하게 부르면서 생각에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고 했다. 바울은 자신이 교회에서 가르칠 때는 자신의 마음으로도 알 수 있는 다섯마디의 말로 하겠다고 한 뒤에 "형제들아!" 라고 불렀기에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개역은 지혜라고 의역을 했지만 원어는 새번역처럼 생각이라는 뜻이다.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자신에게 잘 못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고 박수쳐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린아이 같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방언을 하면서 들은 "날 봐라~~!" 라고 자기 자랑을 했던 것이다. 이는 13:11절에서 사랑을 말하면서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한 것과 연결된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만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 조차도 그런 어린아이처럼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악에는 젖먹이가 되라는 것이다. 한글 번역에서는 둘 다 아이나 어린아이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젖먹이가 되라는 뜻이다. 악은 하나도 생각할 줄 모르고 오직 먹는 것만 생각하는 젖먹이처럼 되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악을 대조한 것을 보면 어린아이 같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생각하는 것이 어른이다. 그러한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이 바로 악이다. 자기 육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악인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에 관해서는 장성한 어른이 되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자기 중심적 생각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생각하는 영적으로 장성한 어른이 되라는 것이다.

21절은 "율법에 기록하기를"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율법이란 좁게 보면 모세 오경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넓은 의미로 구약 전체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그 내용은 이사야28:11-12절을 인용한 것인데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만 가져오고 자신의 말로 바꿔 쓴 것이다. 이사야 28:11절에서는 경멸스러운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원어에서는 입술과 혀가 대조가 되기에 하나는 입술로 번역하고 다른 것은 방언으로 번역하면 안된다. 말은 혀로 소리내는 설치음과 입술로 소리내는 순경음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 두가지가 합쳐져서 다른 언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바울은 그 순서를 바꿔서 다른 혀와 다른 입술로 말한 것이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혀와 다른 나라의 입술로 말한다 해도 그들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본래 이사야의 말씀은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가 전하는 분명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비웃었다. 그 결과 그들이 알 수 없는 앗시리아의 언어로 듣게 하심으로 심판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사야에서는 알 수 없는 입술과 혀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표지가 된 것이다. 이사야가 분명히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경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뒤 앗시리아의 언어로 심판의 말씀을 전한 것은 중히 여긴 것이다.

바울이 이 구절을 인용한 초점은 바로 이 점이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바울이 이사야처럼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했지만 듣지 않고 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앗시리아 말과 같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중히 여기는 모습을 두고 한 말이다. 공예배에서 통역이 없는 방언의 문제점은 그 자리에 가득 채워진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교회에 통역이 없는데 영어 사용자 한 사람이 앉아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신자들에게 가르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불신자를 전도하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사야에서는 경멸스러운 입술이란 이방인의 입술이다. 다른 혀도 역시 이방인의 혀를 말한다. 그것을 바울은 다른 혀 다른 입술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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