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15-16 나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말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방언으로 드리는 감사에 어떻게 아멘으로 화답하겠는가?
이전 말씀은 자신도 뜻을 알 수 없는 방언하는 사람들은 통역해서 그 의미를 스스로 알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영으로 또한 자신도 알 수도 있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겠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다면 그 장소에 가득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아멘 하겠느냐는 것이다.
새번역이나 ESV, NIV, NLT 등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의 본래 의미는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미이다. NASB 는 그 결과 라는 말을 넣어서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NASB가 원어의 본래 의미를 그대로 살린 번역이다. 내가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도 거둘 수 없다는 것과 연결하여 나도 모르는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뜻이다.
그 답은 그래서 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또한 마음으로도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의 초점은 방언으로만 기도한다면 나는 그 의미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바울은 내 영으로도 알고 내 마음으로도 알도록 방언이 아닌 분명히 알 수 있는 말로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내 영으로도 알고 내 마음으로도 알 수 있는 분명한 말로 찬양하겠다는 것이다. 찬양이라는 말은 하프 같은 악기 반주에 맞추어 찬양한다는 뜻이기에 공적 예배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분명한 언어로 기도하고 찬양하겠다는 뜻이다.
16절은 그렇지 않고 그대가 영으로만 감사를 드리면 이라는 조건문으로 시작한다. 감사를 드린다는 말은 칠십인역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를 뜻한다. 영으로만 감사를 드린다는 말은 방언으로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면 이라는 뜻이다. 이 감사는 공적 예배 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다수는 여기서 감사가 주의 만찬에서의 감사가 아니고 기도와 찬양에 포함된 것으로 본다. 감사가 기도와 찬양과 별개의 행위가 아니라 기도와 찬양 가운데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공적 예배에서 기도와 찬양 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방언으로 한다면 그 자리에 가득 차 있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네 감사에 대해 아멘이라고 말하겠느냐는 것이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번역한 말은 개역은 무식한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갓 믿기 시작한 사람으로 번역했다. 이 말의 본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은사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고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 아니다. 그 자리에 가득채워져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어에서 16절 끝부분에는 이어서 네가 뭐라고 말하는지 완전히 알지도 못한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이는 14:2-3절에서 방언과 예언을 비교해서 말한 것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예배시간에 말하는 자신도 모르고 그 자리에 가득 차 있는 통역의 은사가 없는 대부분이 알지도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대신에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예언을 하라는 뜻이다. 모두가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예배시간에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 자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