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10-12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말소리들이 있지만 뜻이 없는 말소리는 없는 것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넘치도록 하라.
이전 말씀은 만약 내가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기들이 악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허공에 말하는 셈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세상에는 뜻이 없는 말이 없고 뜻을 알지 못하면 딴 세상 사람이라며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은사를 넘치게 하라는 내용이다.
10절은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말소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개역에서 소리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말로 번역한 말은 본래 소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의미없는 모든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구약에서도 거의 예외없이 사람들의 말소리나 통곡소리나 외침등으로 쓰인 말이다. 7절에서는 악기 소리라는 경우에 썼지만 생명없는 소리라고 한 것은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어떤이는 방언이라는 말과 구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단어를 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의 의도는 방언이라는 말이 언어가 아니라는 뜻으로 쓴 것이라기 보다는 앞에서 생명이 없는 악기소리의 예를 든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생명이 있는 실제 사람 말소리라는 의미로 쓴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사용한 방언이라는 말의 의미는 분명히 언어라는 뜻이다. 그것이 이 땅의 언어이든 천상의 언어이든 분명한 의미는 언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바울은 언어라는 추상적 단어 대신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수사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말소리의 종류가 많지만 뜻 없는 소리는 없다는 것이다. 뜻없는 소리라는 말은 LXX에서는 말을 못하는 우상에게 쓰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벙어리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말소리와는 반대가 되는 말이기에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닌 소리를 뜻하는 것이다. 사람의 말소리의 종류는 많지만 사람의 말소리가 아닌 것은 없다는 뜻이다.
11절은 그러므로 만약 그 말소리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내가 그 말하는 사람에게 외국인이 되고 그 말하는 사람도 내게 외국인이 된다는 것이다. 원어는 야만인이라는 뜻의 barbaros 인데 영어의 Barbarian이라는 말이 이 말에서 왔다. 그 의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그리스 로마세계 사람들에게는 그 말들이 Bar Bar 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맥상 그 의미는 서로가 서로에게 외국인이 되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서로의 말소리는 의미 없는 소리처럼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에서 방언으로 말하고 통역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없는 시끄러운 소음이고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12절은 이와 같이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이와 같이 라는 말이 앞에 나온 악기와 언어의 예와 연결하면서 동시에 13절 이후의 그러므로 로 이어지는 내용과도 연결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다. 13절 이후에도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며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라는 말은 고린도전서에서 거의 예외없이 앞에 나온 말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와 같이 라는 지시어가 지시하는 본문의 지시관계와 이어지는 문맥의 전개는 구별해야 한다. 6-11절은 네 가지 비유를 통해 이해 가능한 의사소통을 하라는 내용을 말하고 있고 12절의 이와 같이는 바로 앞에서 말한 것을 가리킨다. 13절 이후의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는 내용은 그 원리를 방언과 통역에 실제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영적 은사를 추구하는 사람이니 교회를 세우는 일을 추구하여 넘치게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영적 은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영적 은사를 추구하는 열심당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장항쟁으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려는 열심당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려는 열심당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열심당의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12절 끝부분에는 그 결과 풍성히 넘치게 되도록 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새번역은 은사를 풍성히 넘치게 하라고 번역했는데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넘치게 하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바울의 초점은 은사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튼튼하게 세워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