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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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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전서 13:11-13

남아있을 것 중에 제일 큰 것은 사랑이다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7. 4.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13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3:11-13 어릴 때 불완전하던 것들을 어른이 되어 다 버린 것처럼 지금은 거울로 보듯 희미한 것도 그 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분명히 볼 것이고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 세가지만 남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사랑이다.

이전 말씀은 사랑은 떨어지지 않지만 다른 은사들은 모두 완전히 사라진다. 지금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여 권면하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인 것들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지금은 온전하지 않지만 때가 되면 온전하게 될 것인데 그 때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만 있을 것이고 그 중 제일은 사랑이라는 내용이다.

11절은 내가 어렸을 때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어린아이라는 말은 젖먹이 어린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젖먹이의 개념이 아니다. 고대에는 이유식이 없었기에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먹었고 보통 3-4세까지도 젖을 먹었다. Louw-Nida 사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젖먹이보다는 위이지만 3-4세를 넘지는 않는 때의 어린아이라고 설명한다.

바울은 어린 아이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세 단계로 제시한다. 첫째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았다고 했다.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았다는 것은 충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말했다는 뜻이다. 어른들은 생각하고 말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보는 즉시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깨닫는다는 단어이다. 이는 보거나 듣고 관심을 갖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생각한다는 단어는 계산하거나 평가한다는 뜻이고 회계 장부에 기록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따라서 이 세가지는 즉흥적으로 말하고 보고 듣는대로 생각하고 마지막으로는 가치를 평가하고 계산하며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점층법이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spoke-thought-reasoned로 번역했다. 한국어 번역이 깨닫는다는 단어와 생각한다는 단어의 구별이 어려운 것처럼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번째 단어는 의견을 형성하거나 관심있는 것에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의미로 설명하고 세번째 단어는 가치를 평가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말하다는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말을 뜻하고 두번째로 깨닫는다는 단어는 감정으로 느낀다는 뜻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고 작용이고 세번째로 생각한다는 단어는 계산하고 추론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한다.

이 세 동사를 방언과 예언과 지식의 은사와 연결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바울의 관심은 세가지 은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지식 전달 전체에 있다. 이들은 또 이러한 동사들이 미완료 시제라는 것을 주목하며 계속해서 어린아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계산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완료시제로 말하며 그러한 것을 완전히 폐기했다는 최종적인 전환이다.

말한다는 것은 고린도인들이 방언을 과대평가한 것과 연결될 수 있고 생각한다는 것은 고린도인들의 사고 구조의 미성숙을 암시할 수 있으며 계산한다는 것은 고린도인들의 은사 가치 판단의 왜곡과 연결될 수 있디고 해석하며 바울이 말하는 완전함은 종말에만 실현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9-10 절에서 부분적인 것과 온전한 것이 현재와 종말의 비교라면 여기서도 불완전한 어린아이들과 완전한 성인의 비교는 역시 현재와 종말을 비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완료 시제에서 완료시제로 바뀐 것도 역시 부분적인 것과 온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종말론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12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앞에서 말한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 때 하던 것을 완전히 버렸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고 했는데 원어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수수께끼라는 뜻이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본다는 것이다. 거울로 보는 얼굴과 직접 마주보는 얼굴이 대조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울의 핵심은 흐릿함이 아니라 계시가 간접적이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수는 청동거울의 품질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선명함이 대조된 것으로 본다.

어느쪽이 맞는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이어지는 문맥에서 봐야 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러나 그 때는 완전히 아는데 참여할 것이다. 마치 내가 완전히 알려진 것처럼 이라는 뜻이다. 새번역과 개역은 완전히 알려졌다고 한 것이 수동태이기에 신적 수동태로 해석하고 하나님이라는 말을 넣어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부분적으로 안다는 말과 완전히 다 안다는 말은 간접적이라기 보다는 지금은 완전히 다 알지 못하지만 그 때는 완전히 다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13절은 그러나 지금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가 머물러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사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라는 말은 시간을 말한다기 보다는 결론적인 선언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결론으로 볼 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만 남아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해석상 난제가 생긴다. 바울은 13장 전체에서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했는데 마지막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 남아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영어 번역들도 NLT는 “will last forever” 라고 번역해서 명백히 종말론적으로 번역했다. KJV나 NRSV를 비롯한 다수의 번역들은 “abide”로 번역해서 종말까지 지속되는 느낌을 남겼다. 그러나 NIV나 NJB는 “remain” 이라고 번역해서 논리적으로 고려할 때 이 세가지만 남았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에 대해 일부는 이를 종말론적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지금까지 논의한 은사 중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이 세가지라는 의미일 가능성을 제시하며 은사들은 사라지지만 이 세가지는 여전히 논의의 중심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다수는 은사들은 사라지지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종말 이후에도 계속된다고 말한다.

로마서 8:24절에서 종말이 되면 소망은 기능을 잃는다는 내용이 있고 또 고린도후서 5:7절에서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믿음과 소망은 믿음과 소망은 종말에 필요없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믿음 소망은 종말까지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현 시대에만 남는다면 문맥상 바울의 논리는 무너진다. 앞에서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다 사라지고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때는 완전하게 된다고 하면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만 남는다고 했기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사라지는 것과 대비되어 계속 남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 13:7절에서 사랑은 믿고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믿음과 바라는 것 즉 소망은 사랑의 작용인 것이다. 따라서 이 세가지는 함께 끝까지 가야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는 현재 계속 존재한다는 뜻이지만 종말에도 계속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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