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29-31 바울은 은사들은 다양하지만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며 그 중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면서 최고 좋은 길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13장과 연결한다.
이전 말씀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각각은 그 지체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도와 예언자와 교사 이 셋을 먼저 세우셨고 나머지 은사들도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은사들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모두가 다 같은 은사를 소유할 수는 없다며 더 큰 은사를 구하라는 내용이다.
29-30절은 28절에서 말한 일곱 가지의 은사들을 다시 반복하여 나열하며 앞에서 말한 순서대로 다 사도는 아니지 않느냐? 다 선지자는 아니지 않느냐? 다 교사는 아니지 않느냐? 그 밖의 여러 기능들을 하나씩 지적하면서 일일이 되 묻는다. 이는 당연히 아니라는 답을 기대하는 수사학적 질문이다. 먼저 모두가 다 사도겠느냐? 모두가 다 예언자 겠느냐? 모두가 다 교사겠느냐? 라는 질문 세가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이 세가지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들이다. 그 다음에는 능력을 행하는 자와 병 고치는 자를 짝지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방언을 하는 자와 통역하는 자를 짝을 지을 수 있다. 절을 나눌 때 능력을 행하는 자는 30절로 보냈어야 했다.
이러한 일곱가지 수사학적 질문이 은사가 각각 서로 다르다며 은사 다양성을 표현한 것이지만 어떤 은사도 멸시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너희 은사가 얼마나 다양한지 보라는 뜻이 아니라 너 혼자서는 충분하지 않으니 다른 지체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결국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일치하지만 은사의 다양성에 초점을 두느냐 아니면 협력에 초점을 두느냐는 것의 차이이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히브리어나 고대 근동 문화에서 충분히 많다 또는 완전하다는 의미의 상징적인 숫자이다. 창세기의 창조도 7일인 것은 완전한 창조라는 뜻이고 죽은 자를 애도할 때 7일간 하는 것도 충분한 날들이라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가지 재앙들도 충분히 많다는 뜻이고 모든 종류의 재앙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바울이 일곱가지의 은사들을 나열한 것은 교회 안에는 일곱가지 은사만 있다는 뜻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종류의 은사를 가질 수 없기에 서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탁월한 은사를 가진 자들을 존중하되 시기하지 말고 각자 맡은 기능에 충실하라는 말로 이해하지만 바울의 의도는 그런 뜻이 아니다. 더 중요한 역할이나 기능을 맡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12:21-23절에서 존중을 받는 중요한 지체보다 그렇지 못한 지체들을 더 존중해야 한다고 한 것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방언과 같이 특별하게 보이는 은사를 중하게 여겼고 그런 은사를 가진 사람은 자기를 높였다. 이렇게 일곱가지 은사를 다시 부정의 질문을 일곱 번 반복하며 질문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12:31절은 그러나 더욱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로 시작한다. 서로가 자신을 높이지 말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지체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더욱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것이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이 계속 그렇게 더 큰 은사를 추구하라고 비꼬는 아이러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가 최고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는 말로 더 큰 은사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며 이는 13장의 서론이 아니라 12장의 결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12:31절이 13장의 시작으로 보고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을 비꼬는 표현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는 말은 최고의 은사를 추구하는 길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가장 좋은 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사랑을 행하며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약한 지체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3:1절 부터 나오는 사랑 시리즈는 바로 그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내용이기에 12:31절과 끊어서 이해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