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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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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전서 10:9-11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주는 경고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5. 23.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10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0:9-11 그리스도를 시험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처럼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 불평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처럼 불평하지 말자. 그러나 이런 일들을 기록한 것은 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하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갈망하는 본보기가 되었는데 그들은 우상숭배를 위해 우상의 신전에서 먹고 마셨고 우상을 위해 춤을 추고 성관계를 가졌기에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으니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시험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의 본보기 경고하는 말씀을 들으라는 내용이다.

새번역은 9절 첫 부분을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고 번역했다. 그러나 개역은 주를 시험하지 말자고 번역하며 9절 끝부분에 배치했다. 원문은 9절 새번역처럼 9절 첫부분에 나온다. 개역은 주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그리스도로 번역한 것은 사본상의 차이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사본인 P46과 5-9세기 대문자 사본들과 대다수의 후기 소문자 사본들은 그리스도로 기록하고 있고 초기 교부들 여럿이 그리스도로 읽었다. 그러나 4세기 사본인 Codex Sinaiticus와 Codex Vaticanus와 일부 소문자 사본들은 주라고 기록했다. 사본들의 증거로 보면 그리스도가 원문이다. 사본학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본문과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이 함께 나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원문으로 본다. 주를 시험하지 말자는 표현은 구약에도 나오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오늘날 다수의 학자들은 그리스도를 원문으로 본다.

원문에서는 이어서 어떤 이들은 시험하다가 뱀에 의해 멸망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민수기 21:5-6절에서 어찌하여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는지 원망하는 내용을 근거로 한 말이다. 앞에서 우상숭배하지 말자와 간음하지 말자는 것과 같이 … 처럼 이라는 공식으로 말한다. 과거 이스라엘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하면 멸망한다는 것이다. “주를 시험하지 말자” 에서 시험한다는 말은 결과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의심한다는 뜻이다.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결과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미리 의심하고 원망하여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다. 우상숭배하고 간음한 사람들의 마음이 주에게서 떠났기 때문에 이들은 주의 능력을 의심하고 원망하던 것이었다. 주를 시험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바람난 여자가 새서방에게 빠져 자기 남편의 능력을 의심하고 남편을 원망하는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누가복음 10:25 에서는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가 시험했다고 했는데 이는 당시 유대교의 공식적인 랍비가 비공식 랍비였던 예수를 시험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갈릴리에서 온 무식쟁이가 뭘 알겠나 라고 의심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0: 9절의 시험하지 말자는 말도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사막에서 고생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과연 맞게 인도하긴 하고 있는거냐? 하나님이 능력이 있기는 한거냐? 우리는 더 이상 이 맛 없는 만나를 먹기 싫다. 이집트에 있을 때 우상의 신전에 앉아 맛있는 고기 먹던 때가 좋았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면서 섬기던 우상이 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네가 우리를 속여 이 사막으로 데리고 와서 다 죽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도 고린도 교회에 나와서 말하기를 이곳에는 고기도 없고 술도 없도다 라며 이방신전에서 즐기던 것들을 그리워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전에 아프로디테의 신전에서 예배할 때가 좋았다. 거기서의 파티는 정말 좋았다. 음식도 훌륭했고 2차 파티에서도 정말 재미있었다. 무슨 만찬이 이러냐. 맛도 없는 싸구려 빵에다가 값싼 포도주가 뭐냐?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데 이 따위 것 먹게 생겼냐? 도대체 우리 주 그리스도는 능력이 있기나 한거냐? 아프로디테가 더 낫지 아니하냐?” 이렇게 주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의심하는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에게 바울은 민수기 21:6절을 인용하며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뱀에 물려 멸망한 것처럼 주의 능력을 의심하는 너희들도 멸망할 것이다. 당장 그런 의심을 멈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고린도 교회의 강한자들이 그리스도를 의심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너무 힘들어 한 것이고 차라리 전에 우상숭배할 때가 더 좋았다고 한 것이다.

10절도 원망하지 말자 마치 … 처럼 이라는 공식으로 말한다. 10절은 민수기 14:2에서 왔다. 정탐꾼이 가나안 땅 탐지하고 돌아와 대부분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백성들은 애굽땅이나 광야에서 죽게 놔 두지 왜 여기까지 끌고 왔느냐며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원망이라는 말은 증거를 보고 나서 불평하며 원망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보여주셨지만 약속의 땅에 대해 실망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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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 사람들도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게 뭐냐? 오히려 전에 이방신전에서 파티하며 상류층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던 것이 더 낫지 않느냐? 주를 믿으면 받을 축복이 겨우 이런거냐?” 이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주께 불만을 표시하며 원망하고 있었던 것 이다. 주를 향한 사랑이 없기에 받은 은혜도 하찮게 보여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바람난 여자가 남편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과 같다.

11절은 1-10절을 마무리하고 있다. 11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한 예와는 달리 우리는 멸망하지 않도록 경고를 하신 것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보여준 본보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고린도 교인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말은 역시 우리에게도 동일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본보기는 우리를 향한 경고인 것이다. 사막에서 멸망한 이스라엘 조상들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것이다.

원어에서는 말세가 아니고 말세들이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복수로 기록된 것은 히브리 사상에서 온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한 끝은 다른 끝과 연결되어 있고 구시대의 종말은 새로운 다른 끝인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연결되어 있어 이 때문에 복수로 쓰인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가 이미 왔고 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세대와 영접한 세대인 두 세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점에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서 있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다음 문단에 이어지는 12절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때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해하기 힘든 구절은 앞 뒤의 구절들과의 연결관계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 12절에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는 침례 받고 주의 만찬에 참여했으므로 이미 구원받은 줄로 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이것은 예수를 알지 못하던 세대의 한 끝과 예수님 오심으로 선포된 또 다른 한 끝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잘못해서 넘어지면 믿지 않는 세대 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말세는 세상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 시대와 마찬가지로 말세들에 서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세대의 한 끝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세대의 다른 끝이 겹쳐 있다.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주를 시험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사막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준 본보기이다. 본보기라는 말은 우리도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도 다 멸하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본보기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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