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15-16 바울이 성도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권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지원해 달라고 쓴 것이 아니며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아무도 자신의 자랑거리를 헛되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이어서 그렇게 사례 받지 않고 복음 전한 것이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그리스도께서 시켜서 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례를 받을 권한을 가졌지만 복음에 장애물을 놓지 않기 위해 참는다며 이런 권한은 구약에도 나와있고 예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신 권한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이런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며 복음 전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사명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15절은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들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러나는 복음 전하는 자는 구약을 보아도 그렇고 주님께서도 복음 전하는 일로 먹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으나 라는 뜻이다. 12절에서는 단순히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나를 특별히 강조하고 또한 완료형을 사용하여 자신은 앞에서 말한 권리들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12절에서는 우리는 쓰지 않았다는 것은 과거에 한번 그랬다는 뜻이다. 그 때는 바울 일행도 함께 그 권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울 자신만 전혀 쓰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내 경우에도 그렇게 해 달라고 이것을 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에게로 번역된 말은 내 경우에도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내 경우에도 그렇게 물질로 지원해 달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중에 썼다는 단순 과거를 쓴 것은 편지를 받는 사람의 시점을 생각하여 그렇게 쓴 것이다. 따라서 본래 의미는 본래 복음 전하는 자들은 교회를 통해 지원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지만 내 경우에도 그렇게 해 달라고 쓰고 있는 중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내게 더 좋다는 말이 나온다. 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뒤에 나오는 말과 연결하여 누구든지 내 자랑거리를 헛되게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개역과 NJB만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라고 말을 끝맺지 못한 것으로 번역했다. 다수는 이 말이 뒤에 나오는 말과 한 문장이 아니라 NJB처럼 말을 끝마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문장을 끝맺지 못한 것이다.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어떻게 고린도 교회 가난한 성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워 복음 전파에 걸림돌을 놓느냐는 뜻이다. 개역이 이러한 느낌을 옳게 번역한 것을 개역개정은 말없음표를 지우고 뒷부분과 한 문장으로 연결해서 그 느낌을 지운 것이다.
이어서 아무도 나의 자랑을 헛되게 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앞에서 말을 마치지 못한 뒤 쏟아낸 감탄문이다. 따라서 "아무도 나의 자랑을 헛되게 할 수 없다!" 라고 격한 감정을 쏟아놓은 말로 읽어야 한다. 헛되지 않게 한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1:17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한다고 할 때도 사용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1:18-31절을 보면 바울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뿐이라는 내용이다. 바울은 자신이 굶어서 죽을지언정 가난한 성도들로부터 사례를 받지 않고 고통스럽게 일한 것을 절대로 자기 자랑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한 일이 절대로 자신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유일한 자랑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16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가며 만약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네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바울은 모든 세상 영광을 다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특별히 고린도에서는 대다수의 성도들이 하층민들이고 노예들이었기에 그들의 형편을 알기에 노예처럼 노동하면서 사례를 받지 않고 사역을 했다. 이는 고린도 성도들의 지붕이 되어 참고 견디며 그들의 비바람을 대신 맞아 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울의 사역이 칭찬을 받게 되면 바울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화되는 것이다.
더구나 고린도 교회 안에 있던 로마제국 최상류층 사람들이 주는 돈을 받아서 사역한다면 고린도전서 5:6절에 나온 고린도 성도들처럼 세상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보다는 세상 영광을 따르는 그들에게서 지원을 받는다면 바울도 역시 그들의 세상 질서 안에 편입되는 것이기에 바울은 그들의 지원을 거부하고 자원해서 노예처럼 노동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자기 자신이 노동하며 사역한 것을 자랑하거나 세상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이 자신을 지원해 준다는 것을 자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죽을 지언정 그렇게 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16절 뒷부분은 왜냐하면 어쩔 수없이 해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원어의 본래 의미는 꼭 해야할 일이 내 앞에 놓여져 있다는 뜻이다. 이는 노예 주인이 그날 하라고 명령한 일이 자기 앞에 놓여있는 그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라고 시키셨는데 그 일이 자기 앞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서 또 다시 왜냐하면 이라고 말하면서 만약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기셨고 그 일이 자기 앞에 놓여 있는데 그것을 안하면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을 본받아 흉내내며 복음 전하고 있는 일은 절대로 자기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