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5-7 우리도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육체 노동하지 않고 교회로부터 지원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이다.
이전 말씀에서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변론한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고 질문한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도 결혼하고 사역하고 노동 안하고 사례비 받으며 사역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다.
5절은 두 개의 부정어로 시작한다. 첫번째 질문은 우리는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결코 없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자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여자 성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원어에는 그 다음에 여자라는 말이 또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2-3세기에 활동했던 교부 터툴리안은 사도들과 함께 여행하며 사역을 돕던 여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역시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이것은 성적 금욕 서약 아래에서 사도들과 동행하던 사도들의 아내들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사역했던 오리겐도 자신의 고환을 자른 것으로 보아 2-3세기에는 기독교가 금욕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그렇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금욕주의는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니라 스토아 철학과 견유학파 철학과 동방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하는 것이나 결혼 안하는 것이 거룩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믿는 아내와 함께 동행하며 사역하는 권리로 해석한다. 공동체들은 결혼한 그 부부를 부양해야 한다고 기대하는데 이는 아내 역시 남편의 그리스도인 사역과 관심을 함께 공유하며 그 사역들 안에서 남편을 도울 것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나머지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나머지 사도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을 제외한 나머지 사도들은 결혼한 아내와 함께 다니며 함께 사역한 것으로 보인다. 주님의 동생들에 대해서는 카톨릭이나 동방정교회는 마리아가 결혼 전이나 후에나 동정이었다고 가르치기에 주의 형제들이나 요셉이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녀들로 해석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성경에 나오지 않은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으로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은 자연스러운 가족을 뜻하는 의미로 여러 차례 나오기 때문이다. 또 마태복음 1:24-25절을 보면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했기에 아들을 낳은 이후에는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갔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나중에 낳은 자녀들로 처음에는 예수님을 반대하던 형제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뒤에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복음 전하는 일을 했던 것을 가리킨다. 특별히 게바 즉 베드로만 이름을 콕 집어서 말한다. 마태복음 8:14절에 나온 것처럼 베드로가 이미 널리 알려진 결혼한 사도였기에 결혼한 사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강조해서 언급한 것이다. 또 고린도전서 1:12절에서 게바파라고 한 것처럼 베드로는 고린도 교회에서 잘 알려진 권위있는 사도였기 때문이다. 바울 당시 교회는 사역자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그 배우자 역시 동일한 사역자로 보고 함께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도 당연히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사역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지 여기서는 결혼이 핵심이 아니다.
6절에서도 그렇지 않다면 나와 바나바만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겠느냐고 질문한다. 개역은 일하지 않는다고 번역했지만 그 의미는 힘든 육체노동을 뜻하는 것이기에 새번역처럼 노동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의 의미를 분명히 한 번역이다. 여기서 일이란 사역이 아닌 육체 노동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절에서 결혼하고 배우자와 함께 사역하며 교회를 통해 지원받은 것을 말한 것은 분명히 바울과 바나바는 직접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7절에서 바울은 주를 위해 복음 전하는 사역을 하면서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며 특별히 결혼한 배우자와 함께 살 수 있을 만큼 지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의 예를 세가지 비유로 말한다. 첫번째 비유는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새번역에서 자기 비용이라고 번역한 말은 다수의 영어 번역들이 expenses로 번역한 것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원어의 본래 의미는 식량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군인들에게 지급되던 곡식과 고기와 과일 소금 등 실제 식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군인이 자기가 식량을 마련하여 갖고 다니며 복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뜻이다.
두번째 비유는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고 질문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창을 했을 것이다. 전쟁이 나서 적이 다 빼앗아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경우는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 비유는 양 떼를 돌보고 그 젖을 짜 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답은 역시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비유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자가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의 형편을 보고 그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는 로마제국의 귀족들도 소수가 있었지만 그들로부터 받는 것은 거부한 것이다. 그들은 성경적 원리에 따라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제국의 사회적 구조와 질서에 따라 상대를 낮추고 자신들을 높이며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