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35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고 올가미를 매어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분산되지 않고 품위있게 주님을 섬기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결혼한 남자나 여자는 자신의 배우자에게 마음이 분산되지만 결혼하지 않은 남자나 여자는 주를 기쁘게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올가미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유익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며 품위있게 주님만 섬기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35절은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여러분에게 올가미를 던지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조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유익과 올가미를 던지는 것이다.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말은 독신주의나 금욕주의에 근거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영적으로 유익이 되는 실제적 권고이고 목회적 권고를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 반대는 사냥꾼이 미끄러지는 매듭을 지어 사나운 짐승에게 올가미를 던지는 그림이다. 그 올가미는 그 동물이 날뛰면 날뛸수록 목을 점점 더 조이게 되어 있다.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들이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두려움이라는 목줄을 죄어 잡고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그 줄을 잡아당기며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예언자는 마치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자기 양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양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너희들의 목줄을 죄어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너희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35절 뒷부분에서는 올가미를 던져 목줄을 조이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품위있게 살면서 분산되지 않고 주님만 섬기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짝을 이루는 말은 품위 있다는 말과 섬긴다는 말이다. 개역은 이치에 합하게 하여 주를 섬기게 하려는 것이라고 번역한 말이다.
품위 있다는 말은 좋다는 말과 모양이나 외모나 형체를 가리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좋은 모양이라는 뜻으로 우아한 품위가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잘 차려입은 귀부인을 나타낼 때도 이 말의 여성명사를 썼다. 고린도전서 12:23절에는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갖는다는 말에서도 나오는데 아름답지 못한 지체라는 말은 앞에 부정어를 붙여 품위있는 모양의 반대말이다. 생식기를 뜻하는 말로 그러한 부분은 아름다운 옷으로 가려 품위있는 모양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쓰였다.
아름답고 품위있게 차려입은 그림의 의미를 알려면 이 말과 짝을 이루는 섬긴다는 말이 담고 있는 그림을 알아야 한다. 섬긴다는 말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여기만 나온다. 아무데도 나오지 않기에 어떤 이는 바울이 만들어 낸 말일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AD 5세기에 사전 작가인 알렉산드리아의 Hesychius의 사전에 나오기에 바울이 만들어낸 말은 아니다.
섬긴다는 단어 역시 품위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좋다는 뜻의 "eu"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곁에 라는 말과 앉아있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곁에 앉아있다는 말 앞에 좋다라는 말을 붙였기에 좋은 모습으로 곁에 잘 앉아있다는 뜻이다. 좋다는 말을 떼어낸 잘 앉아있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9:13절에서 제단을 모시는 이들이라는 말에 나온다. 제단 곁에 앉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림이다. 그 단어에 좋다는 말만 덧붙인 것이다. 그 다음에 "주님을 향하여" 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두 단어는 주님을 섬기는 자로 품위있게 잘 차려 입고 주님의 제단 곁에서 주님을 향하여 잘 앉아있는 그림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즉시 행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35절 마지막 부분은 새번역은 헛갈림 없이라고 번역하고 개역은 분요함 없이라고 번역하고 개역개정은 흐트러짐 없이 라고 번역한 단어가 나온다. 이 셋 중에서 원문의 의미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것은 개역개정의 흐트러짐 없이 라고 번역한 것이다. 개역개정을 번역한 이들은 분명히 앞에서 잘 차려입고 주님 곁에 잘 앉아 있는 그림을 발견하고 그 차림새가 흐트러짐 없다고 번역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원문의 본래 의미는 나뉘지 않는 다는 뜻이기에 분산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오직 주님의 뜻만 받기 위해 주님께만 집중하고 있고 다른 어떤 것에도 분산되지 않는 모습이다. 개역의 분요함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원문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주님께만 집중하고 그 마음을 다른 곳에는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