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15-16 믿지 않는 배우자가 헤어지길 원하면 헤어져도 상관없지만 평화롭게 살면 배우자를 구원할 지도 모르니 함부로 이혼하지는 말라.
이전 말씀은 믿는 성도에게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있다면 이혼하지 말라. 왜냐하면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성도로 인해 완전히 거룩해지고 그 자녀들 역시 거룩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헤어지길 원하면 헤어져도 상관 없지만 가능하면 평화롭게 살면 배우자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다.
15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14절에서 믿지 않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믿는 사람을 통해 거룩해졌다는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이다. 끝까지 믿음을 반대하고 믿지 않는 경우이다. 그래서 만약 믿지 않는 자가 이혼하기를 원하면 이혼하라는 것이다. 이혼이나 헤어진다는 말은 원어에서 분리된다는 뜻이다. 현재형이기에 계속해서 분리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그 뒤에 나오는 분리되게 하라는 말은 3인칭 명령어이기에 배우자로 하여금 분리되게 하라는 뜻이다. 역시 현재형이기에 계속해서 분리되게 하라는 뜻이다. 이는 완전한 이혼을 뜻한다.
믿음의 형제나 자매가 이런 일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얽매인다 또는 구속 받는다는 말은 본래 노예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 배우자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런 결혼에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대부분 불신자인 배우자가 이혼을 주장할 때는 그리스도의 이혼 금지 명령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며 그런 경우에는 이혼하고 자유롭게 재혼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예수님의 명령은 아내를 함부로 버리던 유대인 남자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배우자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싫어하여 한다면 그런 경우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5절 끝부분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평화 안에서 부르셨다고 말한다. 불신자인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를 극도로 혐오하여 이혼하길 원하면 헤어져도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혼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도록 부르셨다는 것이다. KJV와 NIV는 우리를 평화 안에서 부르셨다고 번역을 했다. 그러나 나머지 대다수의 번역들은 개역이나 새번역처럼 너희를 평화 안에서 부르셨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는 사본상의 차이 때문이다. 4세기 사본인 Codex Sinaiticus와 5세기 사본인 Codex Alexandrinus는 너희로 기록하고 있지만 2세기 사본은 P46과 4세기 사본인 Codex Vaticanus와 5세기 사본인 Bazae Cantabrigiensis를 비롯해서 대다수의 후기 소문자 사본들은 우리로 기록하고 있다. 사본의 숫자로 보나 연대로 보나 우리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너희로 기록하고 있기에 문맥에 따라 너희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말이 잘 안되는 것이 원본이고 또 사본의 증거도 압도적이기에 우리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우리도 계속해서 여러분들이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우리라고 말하며 말하는 우리 자신을 포함시킬 때가 있는 것이다.
16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15절 끝에서 하나님께서는 이혼하지 않고 평화 안에서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아내된 이여" 라고 부르며 그대가 혹시 남편을 구원할지 아느냐고 말한다. 반대로 "남편된 이여" 라고 부르며 혹시 그대가 아내를 구원할지 아느냐고 묻는다. 믿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서 믿지 않는 배우자가 구원받을 수도 있으니 함부로 이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혼보다는 가능하면 평화롭게 살라고 권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헬라 철학이나 동방 종교들의 영향을 받아 금욕주의나 경건주의 영향을 받아 가정을 깨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남편이나 믿지 않는 아내와 산다고 경건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과 이혼한다고 경건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