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3-5 각자의 배우자에게 의무를 다하고 상대가 원하는대로 따를 것이며 일시적으로 각방을 쓸 수 있지만 다시 합하여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게 하라.
이전 말씀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여자를 만지지도 않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해 바울은 음행 때문에 각각 자기 아내와 자기 남편을 하나씩만 두라고 명령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서로 각자의 배우자에게 의무를 다하고 상대가 원하는대로 따를 것이며 일시적으로 각방을 쓸 수 있지만 다시 합하라는 내용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당시 스토아 학파나 견유학파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독신주의나 각방주의가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각방주의라는 말은 이미 결혼한 사람들이 성관계를 갖지 않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필자가 만든 말이다. 이러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교회 안에서도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부부생활 하며 사는 성도들보다 성관계를 금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우월하고 경건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결혼해서 성관계를 갖으며 사는 것은 속된 것이고 성관계를 금하는 것이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바울이 쓴 것이 3-5절이다. 3절은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똑같이 하라고 했다.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 들에는 빚이라는 단어가 명사형으로 되어있다. 이는 상대의 성적인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것을 빚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 느낌은 상대의 성적인 요구에 응하는 것은 결혼 안에서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적인 표현이 불편했는지 소문자 사본인 76 사본 필사자는 존경을 빚지고 있는 상태로 표기했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는 분명히 성적인 의무를 빚으로 표현한 것이다. 후대의 많은 사본들에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되어있다. 현재분사는 현재 계속 상대에게 성적인 빚을 지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 느낌은 지금 배우자의 성적 요구에 마땅히 돌려줘야 할 빚을 지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명사형보다 현재 분사형이 그 느낌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사본의 증거는 분명히 명사형으로 빚이 원문이다. 빚이란 상대에게 반드시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성적인 관계를 빚으로 표현했기에 자기의 권리처럼 행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4절은 아내가 자기 몸에 대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고 그 남편이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도 그 자신의 몸에 대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고 아내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여자는 재산으로 취급하고 자신들의 성적인 도구로 취급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히브리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 서로에게 빚을 진 존재이니 반드시 상대가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때 갚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은 정말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것이다.
경건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배우자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건한 사람으로 존경 받는 것을 포기하고 배우자와 함께 살면서 배우자가 원할 때마다 빚을 갚아주는 심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이고 부부간의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독신주의자들과 각방주의자들의 견해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5절에서 각방을 쓰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면서도 각방주의자들에게 타협안을 제시한다. 5절에서 바울은 서로 물리치지 말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는 서로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빚을 갚지 않는 것이 속이는 것이다.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 서로가 합의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합하라는 것이다.
당시 독신주의나 각방주의를 주장하던 그리스 철학자들은 경건생활을 위해 독신주의나 각방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몰래 사창가로 갔다. 고린도 교회의 각방주의자들도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되기 쉽기 때문에 바울은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할 동안 부부간의 합의하에 각방을 써도 좋다는 바울사도의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니까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허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