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14-17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살리실 것이니 우리 몸은 사라질 것이 아니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를 떼어 창녀의 몸에 붙일 수는 없고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한 존재이기에 주님의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이전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이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모든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바울은 그러한 자유가 공동체에 유익이 안되고 그러한 잘못된 자유에 예속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몸은 주님과 연합된 존재이기에 음행은 주님과의 연합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살리실 것이니 우리 몸은 사라질 것이 아니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를 떼어 창녀의 몸에 붙일 수는 없다며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한 존재이기에 주님의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14절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를 일으키셨고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한다. 갑자기 엉뚱한 부활에 관한 논쟁을 하는 것 같지만 이는 부활이 초점이 아니라 13절에서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이라며 모두 다 사라져버릴 쓸데 없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봐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것처럼 우리 몸도 일으키실 것인데 부활의 몸은 변화될 것이지만 현재의 몸과 연속선상에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몸을 더럽히면 안된다는 것이다.
살리셨다는 말과 살리신다는 말은 한글 번역에서는 같은 말로 번역되었지만 원어는 다른 말로 되어 있다. 첫번째 것은 일으킨다는 말의 단순 과거형인데 반해 두번째 것은 일으킨다는 말 앞에 밖으로(ek) 라는 전치사가 추가되어있는 미래형이다. 우리를 일으키신다는 말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시는 그림을 담고 있는 말이다. 믿는 자들은 나머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는 것이고 요한계시록 20:5절의 첫째 부활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누가 먼저 부활하느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몸이 사라지느냐 아니면 부활하느냐를 말하는 것이기에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차이를 둔다면 두번째 것은 분명히 죽은 자들 중에 일부가 선택적으로 일으켜지는 그림을 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밖으로 일으켜질 것이라는 단어는 사본상 세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가장 오래된 사본인 P46은 본래 미래형으로 되어있는데 후대의 필사자가 현재형으로 고친 흔적과 과거형으로 고친 흔적 두가지가 남아있다. 4세기 사본인 Codex Vaticanus는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있고 5세기 사본인 Codex Alexandrinus는 현재형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4세기 사본인 Codex Sinaiticus를 비롯한 절대다수의 사본들은 미래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P46에 나타난 두차례의 수정은 표준에 맞추기 위해 여러 사본을 참고하여 수정한 흔적이다. 믿는 자는 이미 부활한 존재라는 신학 때문에 과거나 현재로 기록한 것도 있지만 사본의 증거로 볼 때 이 단어는 몸의 부활을 의미하는 미래형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울의 초점은 부활에 대한 것이 아니기에15절에서 바울은 또 다시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는 말로 이전의 논쟁을 이어간다. 그 내용은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지체라는 말은 원어에서 member라는 뜻이기에 대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member of Christ"로 번역했지만 바울이 말하는 본래 의미는 팔 다리 같은 신체의 일부분을 뜻하는 것이다.
15절 뒷부분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이어간다.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를 떼어다가 창녀의 몸의 일부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이미 한 몸으로 완전히 연합한 상태이기에 그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어 창녀의 몸에 접합하는 수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누가 나의 팔이나 다리를 마음대로 잘라다가 다른 사람에게 접합수술을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고통을 주는 것이고 엄청난 모독인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가지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당시 고린도 사람들이 이방신의 신전의 이방신 예배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말한 것일 것이다.
16절에서 바울은 또 다시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는 말로 이어간다.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 2:24절을 인용한 것이다. 음행을 행하는 것은 당시 로마 법으로 합법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잘라내는 것이고 엄청난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17절은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이라는 것이다. 16절의 합한다는 말이나 17절의 합한다는 말은 본래 쪼개지거나 나눠져 있는 것을 접착제를 써서 붙인다는 뜻이다. 16절에서는 창녀와 육체적 결합에 이 단어를 썼다면 이번에는 영적 연합의 의미로 썼다. 그래서 한 몸이라 하지 않고 그와 한 영이라고 한 것이다. 이제 믿는 자들은 주와 한 영으로 결합되었기에 주님께서 행하시길 원하시는 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녀와 합하는 것은 실제 육체적 관계를 뜻한다기 보다는 자기 생각을 따라 행동하는 것의 대표로 창녀를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 육신의 생각을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바로 창녀와 합하는 것이고 반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라면 그리스도의 생각을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