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12-13 고린도 교인들이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모든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바울은 그러한 자유가 공동체에 유익이 안되고 그러한 잘못된 자유에 예속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몸은 주님과 연합된 존재이기에 음행은 주님과의 연합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불의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는 것이고 이러한 죄는 과거에 모두가 빠져 살던 죄악들이지만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의해 씻김 받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된 사람들이니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이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모든 것이 자유라고 말하지만 바울은 그러한 자유는 주님과의 연합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12절은 대부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표어로 바울의 말에 응답하고 이에 대해 바울이 대답하는 구조로 본다. 여기서 모든 것이 합당하다는 말은 고린도 성도들의 표어 또는 슬로건이 두 번 반복된다. 다만 그 표어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이 표어가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서 쓰이던 것이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사용하던 표어라고 말하지만 영지주의적 성향이 있는 것으로 물질이나 몸은 중요하지 않기에 몸으로는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말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는 바울의 가르침에서 유래된 말이 고린도 교회에서 표어처럼 퍼지고 그 후에 왜곡된 것으로 본다.
이는 이전 문맥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것이 합당하다는 말은 11절에서 바울이 말한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 의해 씻김 받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 봐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세 단계로 의롭다함을 받았기에 더 이상 과거의 죄가 지배하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전에 가르쳤던 그리스도인들의 칭의와 성화를 가지고 이러한 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이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더 이상 죄가 지배하지 못한다는 가르침을 왜곡하여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어떠한 육체적 행위로도 우리를 다시 이전 상태로 돌릴 수 없으니 모든 것이 다 합당하다고 했을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두 번 다 똑 같은 말을 했지만 같은 표어에 대해 바울의 대답은 첫번째와 두번째 대답이 다르다. 첫번째 대답은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했고 두번째는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다수는 첫번째 대답은 공동체적 유익이나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볼 때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본다. 반면에 두번째 대답은 자기 자신이 자유에 관한 것으로 해석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가르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자신들 뜻대로 왜곡하여 죄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하면서 모든 것이 다 합당하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첫번째 대답에서는 교회 공동체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생각하고 그 자유는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두번째로 모든 것이 합당하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에도 제제를 받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울이 사용한 언어유희이다.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말은 합당한 권위 아래에 있지 않다는 뜻이고 합당하다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죄로부터 자유를 주장했는데 거꾸로 그러한 자유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고 그러한 자유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자신은 그러한 자유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13절은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이것도 역시 고린도 교인들의 표어라고 말한다. 음행에 관해 바울이 책망하자 음식과 배의 유비를 통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음식이나 배를 다 폐하신다고 한 것이다. 어차피 다 음식이나 배는 다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냐는 논리이다. 고린도 교인들의 논리는 음식과 배는 일시적이로 물질적 영역인 것처럼 몸과 성적 행위도 이와 같다며 하나님은 영적인 영역만 중시하고 육체적 행위는 도덕적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이다.
바울은 음식과 배가 일시적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다 멸하실 것이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그들의 논리가 잘못된 것을 몸이라는 말로 반박한다. 음식과 배가 일시적인 것을 몸과 음행에 적용하기 위한 비유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은 배와 달리 부활할 존재이고 주님과 연합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음행은 단순히 잠시 있다 사라질 것이기에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몸은 음행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있는 것이고 주님은 몸을 위해서 계신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