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고린도전서 › 6:5-8

Dawn Word

고린도전서 6:5-8

차라리 빼앗기는 일에 참여하라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4. 7.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6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6:5-8 바울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면서 어째서 이를 교회 안에서 처리하지 않고 세상 법정에서 형제를 고소하느냐며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옳은데도 오히려 불의를 행하고 손해를 끼치느냐고 말했다.

이전 말씀은 너희는 장차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 자리에서 천사들까지도 심판할 사람들인데 어째서 세상 사건이 있을 때 교회에서 완전히 멸시 당하는 세속적인 사람들을 재판석에 앉히느냐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면서 어째서 이를 교회 안에서 처리하지 않고 세상 법정에서 형제를 고소하느냐며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옳은데도 오히려 불의를 행하고 손해를 끼치느냐고 말한다.

5절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말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부끄럽게 한다는 말은 본래 안으로 돌린다는 뜻으로 마음 속의 태도를 바꾼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의 동사형은 복음서나 히브리서에서는 공경한다는 뜻으로 쓰였다(마 21:37; 막 12:6; 눅 18:2, 4; 20:13; 히 12:9). 마태복음 21:37절과 마가복음 12:6절에서는 포도원주인이 보내는 종들을 멸시하고 때리고 죽이자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면서 내 아들은 존경하리라고 했는데 태도를 돌려 존경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울서신들에서는 모두 부끄럽게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고전 4:14; 살후 3:14; 딛 2:8). 역시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태도를 돌려서 부끄럽게 한다는 뜻이다. 4:14절에서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했는데 6:5절에서는 반대로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고 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돌려놓으려고 이 말을 썼다는 뜻이다, 원어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는 말은 학자들 사이에서 두가지로 다르게 해석된다. 먼저 없느냐는 말에서 부정어를 빼면 안에 있다는 뜻의 동사의 축약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안쪽이라는 뜻의 전치사로 보고 Be 동사에 해당하는 단어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동사의 축약형으로 이해하고 번역한다면 “정말 너희 중에 지혜로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냐?”는 뜻이 된다. 만약 안쪽이라는 전치사에 Be 동사에 해당하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번역한다면 “너희 중에 지혜로운 사람이 한 사람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냐?”는 뜻이 된다. 의미 상으로는 큰 차이는 없다. 이어서 지혜로운 사람은 믿음의 형제들 안에서 일어난 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어서 덧붙였다. 분명히 많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일을 세상 법정에 맡겨 판단하게 하느냐는 뜻이다.

6절은 그런데 형제가 형제와 함께 고소하며 더구나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는 것이다. NIV나 NLT는 문장 끝에 느낌표를 찍었는데 ESV나 NASB는 물음표를 찍었다. 현재 사용하는 원어성경도 물음표를 찍었다. 그러나 6절 시작 부분에 있는 그런데 라는 말의 대조적인 힘을 감탄문이 더 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절에서 질문한 것에 대해 6절에서는 “그런데 ….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라고 강하게 책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7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참으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미 여러분들에게 실패라는 것이다. 개역은 “완연한 허물” 이라고 번역해서 원어의 “전체적으로 볼 때” 라는 단어를 살려서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이 단어를 생략했다. 허물이나 실패라는 단어는 패배나 손실을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는 로마서 11:12절과 여기에서만 나온다. 로마서 11:12절에서는 경제적 손실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이 말은 경제적 손실보다는 패배를 뜻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영적 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한 것으로 해석한다. 또 이 말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실패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뭐가 그렇게 완전한 패배인가 하면 너희 안에서 서로 소송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패배라는 것이다.

7절 뒷부분에서는 이어서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차라리 속임 당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라고 말한다. 불의를 당한다는 말은 재판에서 자신의 권리를 빼앗긴다는 듯이고 속임 당한다는 말은 강탈당한다는 뜻이다.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는 뜻이다. 불의를 당한다는 것과 속임을 당한다는 것은 수동태로 해석하면 그냥 당하고만 있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간태로 해석하면 자발적으로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Barrett이나 Thiselton은 중간태로 해석하면서 차라리 자발적으로 불의를 당하고 속임 당하는 일에 참여하지 그랬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Barrett, BNTC, 139; Thiselton, NIGTC, 437). 예수께서도 다 아시면서도 속임 당하시고 잡히셔서 죽기까지 하신 것처럼 고린도 성도들도 그렇게 예수님의 본보기를 닮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8절은 그런데 너희는 어째서 반대로 형제들에게 조차도 불의를 행하고 속이느냐고 말한다. 앞에서는 수동태나 중간태였는데 여기서는 둘 다 능동태이다. 그냥 알면서도 불의를 당하고 빼앗김을 당하는 일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았느냐고 했는데 이번에는 너희는 형제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불의를 행하고 적극적으로 빼앗느냐는 뜻이다. 이는 세상 권력에 의지해서 믿음의 형제를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게 하고 그 모든 것을 다 강제로 빼앗느냐고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법과 윤리로는 믿음의 형제를 고소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정당한 것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차라리 고소를 당하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기는 일에 참여하는 편이 옳은 것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