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6-8 새로운 반죽이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완전히 청소하고 순전하고 진실함으로 우리가 누룩없는 빵이 된 것을 계속해서 축하하자.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몸으로는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있어 이미 완전히 판결을 내렸다. 그러니 너희도 당장 그 사람을 교회에서 쫓아내어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왜 당장 쫓아내야 하는지 이유를 누룩의 비유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6절은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다. 자랑한다는 말은 70인역 구약성서에서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찬양이나 칭찬이나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단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는 바울 서신에서만 10번이 나오고 히브리서에서 한 번이 나온다. 만약 히브리서도 바울이 쓴 것이라고 본다면 바울 만이 사용한 단어인 것이다(고대 사본들에서 히브리서는 바울서신으로 분류되어 있음). 앞에서는 교만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크게 부풀리는 장면을 나타내는 그림언어였다(4:6, 18, 19; 5:2). 그것을 이제 자랑한다는 추상적인 단어로 바꾼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좋지 않다. 너희는 작은 누룩이 전체 반죽을 누룩이 되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한다. 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여기서 누룩이란 술 만들 때 쓰는 누룩이 아니고 빵을 만들 때 쓰이는 이스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트란 오늘날처럼 건조된 이스트가 아니고 이스트가 들어있는 작은 밀가루 반죽 덩어리이다. 전날 빵을 만들 때 부풀었던 반죽에서 조금 떼어 놓았다가 새로운 반죽에 넣어두면 전체가 다 발효되어 부풀어 오르고 전체가 다 이스트가 들어있는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대로 두면 퍼져 나가기에 당장 떼어 내라는 것이다.
바울은 아버지의 첩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고린도 교회 안에 있던 로마제국 귀족을 작은 이스트 덩어리로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트는 음행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로마제국의 권력자가 교회 안에서도 권력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바울은 어째서 그런 사람을 자랑하느냐고 했기 때문이다. 고린도 성도들이 그런 사람을 자랑한 것은 자신들도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러한 세속적인 질서가 교회 안에 가득하게 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적인 질서가 교회 안에 가득 퍼지기 전에 당장 떼어내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4장에서 바울이 자신을 로마제국 개선장군의 행렬 맨 끝에서 끌려가는 사형수의 모습으로 말하며 종의 모습으로 섬긴 것이 무효화되는 것이다. 그러한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사역 기간 동안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이고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누룩 없는 빵을 쪼개어 주시며 너희를 위해 주시는 내 몸이라고 하신 가르침이 헛된 것이 되는 것이다.
7절은 오래된 누룩을 깨끗하게 치우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스트는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금방 전체에 다 퍼져버린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그 사람을 교회에서 내쫓으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안에 퍼져 있던 오래된 누룩인 세상 질서가 교회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그러한 풍조 자체를 완전히 뿌리 뽑아 내다 버리고 청소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청소하는 목적은 너희는 새로운 밀가루 반죽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너희가 누룩 없는 자들인 것처럼"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정상적인 본래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본래 누룩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당연히 있어야할 이상적인 조건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본래 누룩 없는 자들인데 그러한 풍조를 그대로 방치하면 너희 모두 다 누룩 있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 하나를 내쫓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풍조 자체를 완전히 청소해서 내다 버리라는 것이다.
7절 끝부분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의 유월절 양이 희생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그리스도 라고 말한다. 이는 누가복음 22:19절에서 빵을 들어서 감사하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 누룩이 없는 딱딱한 빵을 두 손으로 잡고 "딱" 소리 나도록 두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 꺾어서 주셨을 것이다. 쪼개진 빵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자신의 몸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값을 지불하고 사신 바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쪼개진 누룩 없는 빵처럼 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공동체인 것이다. 우리들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래서 본래 너희들은 누룩이 없는 새로운 밀가루 반죽이고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셔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한 뒤 8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8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자!" 라는 말로 시작한다. 명절을 지키자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누룩 없는 빵이 되게 하신 그 유월절을 축하하자는 뜻이다. 이는 유대인들처럼 유월절을 지키자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가 없는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가 된 것을 축하하자는 뜻이다. 명절을 지키자는 말은 계속 지속되는 것을 나타내는 가정법 현재이기에 끊임없이 계속해서 축하하자는 뜻이다.
이어서 오래된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악독의 누룩으로도 말고 라는 말이 이어진다. 원어는 오래된 누룩과 악의와 악독의 누룩이 나란히 병치되어있는 형태이지만 대부분 주석가들은 악의와 악독의 누룩이라는 말은 오래된 누룩의 의미를 설명한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악의와 악독을 퍼트리는 누룩이라는 말은 계속해서 퍼져나가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울이 사용한 누룩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특징은 퍼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의와 악독의 누룩 대신 가져야 할 것은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이다. 악의가 해치려는 악한 의도라고 볼 수 있고 그 반대는 순전함과 짝을 지을 수 있다. 순전함이란 햇빛 아래서 판단한다는 뜻이다. 악이란 본래 은밀한 것이고 숨겨진 특성이 있는 것이고 그 반대는 햇빛 아래서 밝히 보고 판단하는 순전함이다. 악독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도덕적인 것의 반대말로 쓰인다. 짝을 이루는 것이 진실함인데 진실함이란 거짓인 우상들의 반대로 참된 신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악독이 세상 사람들 방식의 윤리라면 진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말씀의 핵심인 사랑이다. 우리는 예수님 닮은 모습을 햇빛 아래서 밝히 드러내고 진리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