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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66:1-6

Dawn Word

이사야 66:1-6

거짓 경건을 혐오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2019. 1. 28.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66장 강해 설교

이사야 66:1-6 거짓으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곡소리 나도록 두들겨 패실 것이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실 것이다.

하: 거짓 경건을 혐오하시는 하나님

나: 자기들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따돌림과 조롱을 당한다

해도 나만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자 이전 말씀에서 새하늘과 새 땅에서는 죄와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과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사람은 하나님을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심판할 사람은 우상숭배하는 제사장이라고 했다.

1절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대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렇게 나란히 대조되는 것이 히브리 시의 특징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서 성전을 크게 지어도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엔 어림도 없다는 뜻이다. 이어서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내 살 집을 짓겠으며 어느 곳에다가 나를 쉬게 하겠느냐” 역시 집을 짓는 것과 쉬게 하는 것이 나란히 비교된다. 인간의 노력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 쉬실곳을 만들 수는 없다는 뜻이다.

2절은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이란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까지 포함한 말이다. 온 천하 만물을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셨기에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서 성전을 지어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은 그런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이다. 겸손한 사람이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다. 회개하는 사람이란 찢어진 영혼이란 뜻이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찢어진 마음을 부여잡고 우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이란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떤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큰 성전을 지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 애통해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두려워 떠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3절은 2절과는 반대로 권력과 재물을 모두 가진 힘있는 자들이 형식적으로 커다란 성전을 짓고 하나님 대신 자기들이 하나님이 되어 설쳐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이 집이고 어디에도 하나님 거하실 집을 지을 수는 없다고 하신 것이다.

3절은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먼저 “소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자는 사람을 죽여 바치는 자와 같다” 라고 했다. 소는 가장 값비싼 제물이다. 사람을 죽이는 죄는 죄중에 가장 큰 죄이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가슴을 찢으며 말씀 앞에 두려워 떨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비싼 소를 드려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가증한 죄라는 것이다. 힘없는 백성들을 수탈해서 백성들은 굶어죽게 하면서 자신들은 거룩한 척하며 값비싼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들을 죽여 바친 죄라는 것이다.

양을 잡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자는 개의 목을 부러뜨리는 자와 같다고 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 양은 죄가 없는 순결함의 상징이다. 온순하게 주인에게 순종하기 때문이다.

개는 가장 더러운 죄의 상징이다. 개는 시체를 파 먹고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먹기 때문이다. 가장 순결한 제물을 드린다며 자랑하는 자들은 가장 더러운 개 목을 꺽어 바치는 자와 같다는 것이다.

부어드리는 제물을 바치는 자는 돼지의 피를 바치는 자와 같다고 했다. 부어드리는 제물이란 첫곡식을 드리는 것이다. 처음 거둔 곡식을 하나님 앞에 부어드리는 것을 돼지피를 부어 드리는 것과 비교한 것이다. 형식적인 감사를 부어드리는 것을 가장 역겨운 것을 부어 드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분향을 드리는 자는 우상을 찬미하는 자와 같다고 했다. 분향을 드린다는 말은 기억나게 하는 향을 태운다는 뜻이다.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또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향을 태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가증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선택한 자들이다. 그들의 영혼은 그들의 가증한 우상들을 기뻐한 자들이다. 사실 원어에는 제사장이라는 말이 없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제사장이기에 제사장이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제사장 만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하나님을 성경 말씀대로 믿지 않고 각자 자기들 방식대로 믿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섬긴다해도 그것이 자기들 방식이라면 가증한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모아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짓는다 해도 하늘을 보좌삼고 땅을 발 받침대로 삼으시는 하나님을 모셔들일 수 없다.

그러한 일이 자신들의 영광과 탐욕을 위한 것이라면 개의 목을 꺽는 것과도 같고 돼지 피를 붓는 것과도 같은 우상숭배인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행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뜻을 따라 행하느냐 내 뜻을 따라 행하느냐 인것이다.

4절은 그래서 하나님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혹독하게 다루어 그들이 겁내는 것을 그들에게 들이닥치도록 하겠다 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니 하나님도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불렀으나 그들이 응답하지 않았으며 내가 그렇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가 보는데서 악한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골라서 하였기 때문이다.”

종은 주인이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고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듣고도 못들은 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다가가서 직접 말씀하시며 당부하셨는데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반대로 보는데서 악한 일을 하고 싫어하는 일을 해서 주인을 노엽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주인이 불러도 못들은 체 하고 있다가 주인이 다가와서 마당을 쓸라고 했는데 주인 보는 앞에서 쓰레기를 마당에 쏟아 붓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행위이다. 조금 더 놔두면 주인을 쳐 죽이고 자신들이 주인이 될 자들이다. 우리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은 안하고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 된다면 이와 같은 자들이다.

5절은 이와는 반대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님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아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들어라” 라고 했다.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과는 반대로 주인이 말하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앞에 엎드려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자들이다.

“너희를 미워하는 백성은 너희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너희를 따돌리며 이르기를 주가 영광을 드러내어 너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우리가 한번 볼 수 있게 하여 보아라 하고 말하나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라고 했다. 현재는 주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는 자들이 조롱을 당하고 왕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악한 자들에게 힘없이 당하기만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에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역사하시는 모습을 한번 보이라는 것이다.

6절은 성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오며 성전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성읍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사는 예루살렘이다. 성전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다. 예루살렘 안에서 사나운 파도가 몰아쳐서 모든 것을 다 부수어버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두들겨 패시는 소리이다.

또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소리가 나는데 하나님의 호통소리이다.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에게 호통을 치며 두들겨 패시는 소리이다. 그래서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님의 대적들에게 보응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이다” 라고 한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기느냐 안섬기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들 방식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느냐에 있다. 여기서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읍과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지도자들을 심판하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자기들 마음대로 큰 건물을 짓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속이며 자신들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을 두들겨 패시지 않고 믿는 자들 특히 자기들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지도자들을 두들겨 패실 것이다. 우리도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기도는 하면서도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은 들은 시늉도 안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이간질한다면 개 목을 꺾고 돼지피를 붓는 자들과 똑같은 자들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듣고 진짜로 순종하느냐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떠드느냐에 있다. 문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태도에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도 자기들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한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가증한 우상숭배에 불과한 것이다. 말씀 앞에 엎드리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듣고 그대로 순종하자. 그것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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