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65:17-25

Dawn Word

이사야 65:17-25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2019. 1. 26.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65장 강해 설교

이사야 65:17-25 새하늘과 새 땅에서는 죄와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과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다.

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나: 성숙한 자들이 먼저 희생하고 인내하며 사랑하고 용서해서 우리 교회가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교회가 되길 기도하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두 다 멸하시지 않고 그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은 남겨두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다 저주하실 것이지만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들은 축복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종들을 어떻게 축복하실 것인지를 자세히 말하고 있다.

56:1절에서 “공평을 지키며 공의를 행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곧 나타날 것이다” 라고 했는데 65:17-25절은 그러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를 자세히 묘사한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는가? 이사야는 인간이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새로운 창조를 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17절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을 보라고 외친다. 그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 하늘과 이전 땅은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라 말한다. 이전 하늘과 이전 땅은 인간의 죄와 슬픔이 가득한 하늘과 땅인데 하나님께서 죄와 슬픔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늘이나 땅이 멋지게 변한다는 데 초점이 있지 않고 죄와 슬픔을 완전히 없애신다는 데 있다. 비유적인 언어로 그림을 그린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18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면서 “길이 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라는 말로 이어간다. 왜 죄와 슬픔이 사라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그곳에는 기쁨과 즐거움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위해 새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다시 창조하신다는 것이다. 그 백성들은 즐거움으로 창조하신다는 것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새 예루살렘을 창조하시는데 기쁨의 예루살렘이고 즐거움의 주민들이다.

18절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두번 반복되었는데 19절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말이 계속된다. 그 기쁨과 즐거움은 새예루살렘의 기쁨이고 그 주민들의 즐거움이지만 이는 또한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인 것이다. 그 안에는 다시는 울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을 떠나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던 백성들을 보고 슬픔과 분노로 가득하셨는데 이제는 하나님도 처음 천지를 창조하시고 좋았더라고 하신 것처럼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게 되고 그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하시다는 것이다.

20절은 죄와 슬픔이 사라진 세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슬픔의 원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는 것이다. 태어난지 몇날이 안되어 죽는 일은 고대에는 아주 흔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갑자기 죽어 슬픔을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새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백살에 죽는 사람은 젊은이 백살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저주받은 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백살이란 아주 오래 산다는 뜻이다. 슬픔도 없이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산다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에서 노아 홍수 이전에 900살까지 사는 것과 같이 처음 창조 때의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을 회복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21-22절은 자기가 집을 짓고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집을 짓는 수고도 헛되고 심은 것도 헛된 것이다.

전쟁이 나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먹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전쟁이 없기에 21절은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들어가서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라고 한 것이다. 22절 앞부분은 다른 사람이 와서 살고 먹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적들이 쳐들어와서 집을 빼앗고 땅에 있는 작물들과 과일 나무들을 다 먹어치우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22절 뒷부분은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 오래 누릴 것이다” 라고 했다.

나무는 천년까지도 산다. 최소한 수백년은 보통이다. 그곳에는 전쟁도 없고 슬픔도 없기에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셨던 때의 모습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오래 오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계속해서 23절에서 이어진다.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라고 했다. 수고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누리게 되지 않고 자신들이 누린다는 것이다. 또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기근으로 굶주리고 병에 걸려서 자식들이 먼저 죽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자손이며 그들의 자손도 그들과 같이 복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오래 오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 것은 물론 그 기쁨과 즐거움이 자손들에게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4절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모습이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어주겠다” 라고 했다. 부모와 자식이 한 자리에 늘 같이 살다 보면 아이들이 부르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요구하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알아듣고 들어줄 수 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25절 앞부분은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라고 했다. 이러한 일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석할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은 이리가 어린 양을 물어가서 슬퍼했던 것이다. 어린아이가 뱀에 물려 죽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사자에게 잡혀먹었던 것이다. 이러한 슬픔들의 원인인 위험한 것들이 다 사라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경에서 비유적인 표현과 사실적인 표현을 혼동하면 안된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은 앞에서 비유로 말한 것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리나 뱀이나 사자는 남을 해치고 속여서 죽이고 약탈하는 잔인하고 사악하고 포악한 인간들의 내면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회복하시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서로 사랑하며 기쁨을 나누며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는 것이다.

죄와 슬픔은 사람들의 이기심과 탐욕에서 나온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이기심과 탐욕에서 나온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갈등도 이기심과 탐욕에서 나온 것이다. 직장 동료들과의 갈등도 역시 이기심과 탐욕에서 나온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인해 오늘날 세상은 그렇게 파괴된 것이다.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신 것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이리나 뱀이나 사자는 모두 사라지게 되고 이 땅에서도 함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는 없고 주님 다시 오실 때만 이루어진다고 하면 안된다. 교회가 바로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여 화합되는 곳이다. 우리 교회가 먼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그 모습을 회복하여 서로 사랑하며 사는 그런 곳이 되게 하자.

이사야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