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5:8-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두 다 멸하시지 않고 그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은 남겨두신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다 저주하실 것이지만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들은 축복하실 것이다.
하: 하나님의 종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나: 이제 진정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만 하며 하나님 기뻐하실 말씀을 가르치고 본을 보이며 살자.
이전 말씀은 속으로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며 남을 정죄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 가슴까지 차도록 갚아 주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두 다 멸하지는 않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남기시고 나머지는 모두 멸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만 모두 구하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들만 일부 남을 것이라 말한다.
8절은 “포도송이 속에 새 포도주가 들어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없애지 말아라. 그 속에 복이 들어 있다” 라고 말한다. 못쓸 포도나무같은 이스라엘에도 좋은 포도주같은 의인들이 일부 남아있고 그들이 복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마치소돔과 고모라를 모두 멸하시겠다고 하실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청하던 것과도 같다. 하나님께서 모두 멸하실 것이라 하시자 의인들을 악인들과 함께 멸하시면 안된다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해서 모두 다 멸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9절은 모두 멸하지 않고 그 중 남기신 일부가 자손이 되게 하고 내 산을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 자손은 택한 사람들이라는 말과 연결된다. 남은 자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또 내 산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산인 시온 산을 유업으로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내산을 유업으로 받을 자는 종이라는 말과 연결이 된다. 택한 사람들과 내 종이란 혈통의 이스라엘을 멸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진정으로 이어갈 남은 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10절은 샤론 평야와 아골 골짜기가 축복의 장소로 나온다. 그러나 샤론은 지중해 해변에 있는 기름진 땅이지만 아골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 여러고 근처에 있는 황무지인 건천이다. 여호수아 7:24-26절에 나오는 아간과 그 가족들을 돌로 친 곳이기도 하다. 샤론은 이스라엘의 서쪽 끝이고 아골 골짜기는 그 동쪽 끝이다. 하나는 기름진 땅이지만 하나는 돌들과 먼지 날리는 흙만 있는 건조한 죽음의 땅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두 장소를 차별없이 가축들을 먹이는 좋은 목초지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개역에는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라는 말이 있는데 새번역은 영어의 NLT와 같이 이 말이 없다. 이는 10절 전체가 목축하는 그림언어로 되어있는데 이 말이 맞지 않기에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뺀 것이다. 하지만 원어는 분명히 이 말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샤론과 아골 골짜기 즉 하나님께서 새롭게 회복시키신 약속의 땅을 그들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이는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닌 택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 주시는 축복을 뜻한다.
11-12절은 약속의 자녀와는 반대가 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11절은 “그러나 나 주를 떠나서 내 거룩한 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차려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부어 바치는 자들아!” 라고 말한다. 주 여호와를 버리고 여호와께 경배를 드리던 시온 산을 잊어버린 자들은 행운이라는 뜻을 가진 시리아의 신인 “갓(Gad)”을 위해 상을 차린다는 것이다. 또 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므니(Meni)”를 위해 섞을 술을 붓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버리고 대신 자신들의 삶에 좋은 일이 있기를 빌기 위해 헛된 신을 찾는다는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저들의 잘못을 책망하시고 심판을 말씀하시기에 불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좋은 복만 말해주는 거짓 신들을 찾아간 것이다.
12절 앞부분은 “내가 너희를 칼에 죽는 신세가 되게 하겠다” 라는 말로 11절과 연결이 된다. 신세가 되게 하겠다는 말이 바로 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므니(Meni)” 와 같은 말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운명이라는 신을 좋아하니? 그래! 너희가 칼에 맞아 죽는 운명이 되게 할께!” 와 같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좋은 일만 있으라고 운명을 찾아 섬겼는데 운명이 칼을 휘둘러 죽게 된다는 아이러니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계속 이어진다. “너희 모두가 살육하는 자에게 몸을 구부리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몸을 구부리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은 엎드려 경배하게 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자신들이 경배하는 그 신은 바로 살육자이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자신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너희 모두” 라고 했기에 아무도 운명의 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칼에 맞고 앞으로 쓰려지는 모습을 엎드려 경배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12절 뒷부분은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하지 않으며 내가 말하여도 너희가 듣지 않으며 너희가 내 눈에 악하게 보이는 일만을 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만을 골라서 하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죽게 되는 이유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애타게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들은 시늉도 안하고 계속 멸망의 칼 앞에 나아가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듣지 않고 딴짓만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탐욕스러운 눈에 끌려 악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13절은 남은 자들이 받을 축복과 이런 악한 자들이 받을 저주를 비교한다. “보아라 내 종들은 먹겠지만 너희는 굶을 것이다. 보아라 내 종들은 마시겠지만 너희는 목마를 것이다. 보아라, 내 종들은 기뻐하겠지만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고 기쁨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나아가는 자들은 굶주리고 벌거벗겨져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것이다.
같은 비교가 14절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보아라, 내 종들은 마음이 즐거워 노래를 부르겠지만 너희는 마음이 아파 울부짖으며 속이 상하여 통곡할 것이다” 라고 했다. 원어는 마음의 기쁨 때문에 기뻐 소리치는 것과 마음이 무거워 소리치는 것이 대조된다. 또 “속이 상하여 통곡할 것이다” 라는 말은 영혼이 찢어져서 울부짖는다는 뜻이다. 이는 슬픔 때문에 탄식의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슬픔을 나타낸 것이다.
15절에서도 저주와 축복은 계속해서 비교된다. 먼저 “너희 이름은 내가 택한 뱅성이 저주할 거리로 남을 것이다” 라고 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죽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되는 남은 자들은 “그러나 주님께서 주님의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실 것이다” 라고 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저주할 이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이 다 저주거리로 남는 것이 아니다. 그 중 남은 자들은 주님의 종이 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섬기는 종들의 하나님이다.
16절앞부분은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빌며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도 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주님의 종들을 두고 한 말이다. 주님의 종들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복을 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맹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16절 뒷부분은 “지난날의 괴로운 일들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않고 지나간 과거를 내가 다시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다시 기억하지 않고 완전히 잊어버리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을 두고두고 아파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도 다 잊어버리셨기 때문이다. 또한 돌아보지 않겠다는 말은 그러한 과거의 일에는 눈을 가리시겠다는 것이다. 머리 속에서 생각지도 않고 눈으로 보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다.
80년대 부흥회에 참석하면 부흥강사들은 가슴을 치며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했었다. 그러면 부흥회 때마다 과거에 지은 죄를 계속 반복해서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던 과거에 지은 죄는 계속 우려낼 소 뼈다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모든 과거는 다 완전히 잊으시고 눈도 가리며 보지도 않는데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회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진짜 경건을 행하지 않으니 거짓 경건을 행하는 것이고 이는 토할 것도 없는데도 계속 왝왝거리며 토하는 시늉을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사람들 보는데서만 말과 행동으로 거룩한 신자인척 하는 자들은 모두 다 멸망할 자들이다.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남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죄를 슬퍼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원수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원수에게까지 친절을 베풀며 사랑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 축복을 받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