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5:1-7 속으로는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며 남을 정죄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 가슴까지 차도록 갚아 주신다.
하: 위선자들에게 갚아 주시는 하나님
나: 겉으로만 거룩 거룩 찾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진정으로 거룩한 자가 되자.
이전 말씀에서 이사야는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아버지이니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이사야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담고 있다.
1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모습을 네단계로 말하고 있다. 첫째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라고 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금방 찾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하나님을 찾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 조차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둘째도 첫부분과 똑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이는 “누구든지 나를 찾으려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이다.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발견되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첫부분에서는 말로 요청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두번째 부분에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나님을 찾을 생각을 하는 사람도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라고 했다. 하나님은 정말 다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여기에 있다고 말씀까지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마치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준비해 놓고 아버지를 “아버지 어디 계세요?”
하고 부르기만 해도 숨어있다가 나와서 선물을 주겠다고 한 아버지와도 같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고 전화기로 게임만 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숨바꼭질을 하자고 만약 아버지를 찾으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아무도 아버지를 찾지 않고 역시 계속해서 전화기로 게임만 하고 있다. 답답해진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나 여기 있다!” 라고 계속 외치며 찾아 오라고 하지만 듣고도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게임만 하고 있는 모습이다.
넷째는 아버지의 말은 듣고도 완전히 개무시하며 게임만 하는 자녀들과도 같은 모습이다. 2절은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을 맞이하려고 내가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라고 했다.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
이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좋지 않은 길로 가는 백성들이란 뜻이다. 좋지 않은 길은 좋은 길의 반대이다. 좋은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인데 좋지 않은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더 애가 타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모습이다. “나 여기 있다!” 가 아니고 아예 큰 길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녀들은 아버지께 등을 돌리고 아버지를 무시하며 반대방향으로 간다. 아버지의 생각을 따르면 복된 길인데도 자기들의 탐욕을 따라 자신들의 생각대로 길을 간다.
이 백성들이 가는 좋지 않은 길은 3절부터 나와있다.
3절은 “이 백성은 동산에서 우상에게 제사하며 벽돌 제단 위에 분향하여 내 앞에서 늘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백성이다” 라고 했다. 동산이란 우상숭배하던 상수리 나무 아래이다. 그곳에서 짐승을 잡아 우상에게 드린다는 것이다.
또 벽돌제단 위에 분향한다는 말은 우상의 제단에 값비싼 향을 드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앞에서” 라는 말은 “내 얼굴 앞에서” 라는 뜻이다. 우리말 식으로 바꾸면 내 코앞에서 이런 악한 일들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고 대놓고 아버지를 욕하는 아들과도 같다. 아버지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도록 계속 자극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한결같이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것이다.
4절은 한술 더 떠서 더욱 더 부정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다. “그들은 밤마다 무덤 사이로 다니면서 죽은 영들에게 물어본다” 라고 했다. 무덤 사이에 앉아서 밤을 지새며 귀신들과 교제하고 귀신들에게 자신들의 미래를 물어 보는 모습이다. 더러운 이방 신들보다 더 저급하고 더 더러운 것이 무덤에 있는 죽은 영들이다.
실제로 죽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악하고 더러운 귀신들과 교제하는 것이다.
또 “돼지고기를 먹으며 이방 제삿상에 올랐던 고기 굴물을 마신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몸을 그릇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쓰실 거룩한 그릇에다가 무덤 사이에 있는 더러운 귀신들의 음식을 담는 모습이다. 우상들과 귀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드렸던 고기와 국물을 먹는 행위는 우상과 귀신들을 자신들의 몸에 담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이사야 첫부분인 1:10-17절에서 책망하신 모습과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다. 이 백성들은 여전히 변함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5절 앞부분은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멀찍이 서 있어라. 우리는 거룩하니 너희가 우리에게 닿아서는 안된다. 가까이 오지 말아라’ 하고 말하는 백성이다” 라고 했다. 이는 거룩한 제사장의 모습이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에게서 멀고 이처럼 더러운 자신들의 탐욕의 우상을 섬기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 거룩을 찾으며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거룩하다고 떠드는 모습이다. 자신들이 더 부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부정하다고 멸시하는 모습이다. 이는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이다.
겉으로는 거룩을 찾지만 내면은 말할 수 없는 더러운 자들이다.
5절 뒷부분은 “이런 자들을 내가 참지 못한다. 그들을 향한 나의 분노는 꺼지지 않는 불처럼 타오른다”
라고 했다. 원어를 직역하면 “내 코 안의 연기 하루종일 타는 불” 이라는 뜻이다. 이 부분은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하나님의 분노의 콧김이고 꺼지지 않는 불과 같은 진노의 불길로 해석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하나님의 코 안에 연기를 계속 피워넣어 방해하는데 그 불이 하루 종일 타오른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문맥으로 보면 바로 앞의 우상과 귀신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더러운 제사장들이 바로 하나님 코 안에 연기를 피워넣는 자들이고 그 불이 종일 타오른다는 것이다. 이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에 하루종일 향을 피우는데 그 향은 하나님의 숨을 막히게 하고 계속 재채기를 하게 하는 연기와도 같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러한 거짓 거룩이 하나님을 역겹게 하고 숨막히게 하는 것이다.
6절은 “보아라, 이 모든 것이 내 앞에 기록되어 있으니 내가 갚고야 말겠다. 그들의 품에 갚을 때까지 절대로 잠잠하지 않겠다” 라고 했다. 그들의 품에 갚는다는 말은 곡식을 자락으로 받는데 가슴까지 차 오르도록 가득 채워주는 모습이다. 그러나 저들의 가슴까지 닿도록 가득채워주는 것은 좋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이다. 품이란 심장과 허파가 있는 몸의 중심이기에 저들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채우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원어에서 7절은 “나를 모독한 자들과 그 조상들의 죄악을 내가 모두 보응하겠다”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영어 번역을 보면 ESV나 NIV나 NLT는 이 부분을 모두 6절에 연결시켜 놓았다. 가슴까지 차도록 갚아주시는데 하나님을 모독한 자들과 그 조상들의 죄악을 함께 갚아 주신다는 뜻이다.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기 보다는 조상들 때부터 그러한 더러운 우상숭배가 끊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상들이 우상숭배를 했더라도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면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우리에게 묻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갚아 주시는가 하면 “산에서 분향하며 언덕에서 나를 모독한 자들” 때문이다. 산들과 언덕들은 우상숭배하던 우상의 신전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거룩 거룩을 찾는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역시 가증한 것이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겠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재어보고 그만큼 그들의 가슴에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부어 주겠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가슴까지 차도록 가득 채워서 갚아 주시는 대상은 겉으로는 거룩 거룩을 말하며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서는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자신들의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사야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진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말을 하고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그 마음 속에는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고 그러한 세상 것을 얻고자 따라가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자들이다. 그릇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속에는 더러운 우상들로 가득한 자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은 누가복음 11:39절에서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라고 하셨다. 44절에서는 평토장한 무덤과도 같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23:27-28절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다.
오늘 말씀은 겉으로만 거룩 거룩 찾으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더럽다고 정죄하는 영적인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다. 자신이 그러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남의 죄를 쉽게 정죄하는가 아니면 용서하고 사랑하는가로 알아볼 수 있다. 원수와 더러운 죄인도 정죄하기 보다는 용서하고 한결 같은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진정한 경건이고 깨끗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만약 쉽게 정죄하고 멀리한다면 그릇의 겉만 깨끗하고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며 하나님을 따라 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