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9-11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동역자이고 여러분은 하나님 소유의 밭이고 하나님의 건물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잘 놓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기초를 바꿔치지 하지 않도록 잘 살펴보라.
이전 말씀에서는 심은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품삯을 받는 자로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 모두 다 하나님의 동역자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고 집이라며 바울 자신은 집을 짓는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놓았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9절은 원문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논란이 있다. 9절의 왜냐하면이 8절 앞부분에서 말한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이 하나인지를 설명한 것으로 말하기도 하고 9절의 왜냐하면이 8절 뒷부분의 수고한 만큼 품삯을 받는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문맥상 바울이나 아폴로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품삯을 받는 존재일 뿐이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둘 다 경쟁자가 아니라 한 팀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문맥은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 모두 다 하나님께 고용되어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을 할 뿐이라는 의미이기에 서로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 한가지 해석상 문제는 "하나님의 동역자" 라는 표현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라는 뜻인지 아니면 바울과 아볼로가 동역자인데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인지 논란이 있다. 다수는 하나님께 속한 동역자로 서로 협력은 하지만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해석. 문장의 구조를 보면 동역자, 밭, 건물 이 세가지가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으로 병행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 소유의 동역자, 하나님 소유의 밭, 하나님 소유의 건물이라는 구조이기에 하나님 소유의 동역자라는 뜻이다. 품삯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고 했기에 분명히 하나님 소유의 동역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나 바울 시대 로마제국에서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을 돌로 만들었다. 바울 당시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처럼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서 다루기가 쉬웠던 탓에 그럴 것이다. 그런 탓에 4000년전의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밭이라고 농작물의 비유로 말하고 바로 이어서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니라” 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건물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건물이라는 말은 바울 당시 사람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는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예루살렘 성전 건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란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거룩하게 여기던 곳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집이란 말은 교회를 말하는데 이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거룩한 모임이라는 뜻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거룩한 모임이라고 말한 뒤 바로 이어서 바울사도는 10-11 절에서 교회의 기초가 세워지는 과정을 잘 지켜보라고 명령했다. 10절은 원문에서 세 개의 서로 다른 형태의 문장으로 되어있다.
첫번째 문장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놓았다.” 이다. 이 말은 바울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유명한 건축기술자처럼 기초를 이미 아주 잘 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초가 이미 잘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기초에 손대서는 안된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두번째 문장은 “다른 이가 현재 그 기초 위에 건물을 짓고 있다.” 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현재 짓고 있다는 것이다. 1세기 그리스-로마 사회의 건축물은 대부분 돌로 지었다. 따라서 짓고 있다는 말은 기초 위에 큰 돌을 쌓아 건물을 세워가는 것을 말한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놓고 떠난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현재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세번째 문장은 “하지만 어떻게 짓고 있는지 조심하라” 인데 조심하라는 말은 원래 잘 지켜보라는 뜻이다. 무엇을 잘 지켜보라는 말인가? 답은 11절에 나와있다. 10절과 11절 사이에 원문에는 “왜냐하면” 말이 있다. “왜냐하면” 이란 말이 11절에 10절의 명령의 해답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여기서 터를 닦는 다는 말은 원래 기초가 되는 돌을 놓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뜻은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미 놓여진 기초석 옆에 다른 기초석을 놓을 수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조금 전에 본 것처럼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건축의 재료로 돌을 써왔다. 커다란 돌로 기초를 놓은 뒤에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또 돌로 쌓아 건물을 세웠다. 건물을 세운 뒤에는 기초로 어떤 돌을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사도가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놓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옆에 또 다른 기초를 몰래 놓고 덮은 뒤 거기에 교회를 세우는 자가 있는지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들은 밤에 몰래 와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석을 파내고 바꿔치기하고 덮어서 알 수 없도록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초공사를 왜 잘 살펴보라는지 그 이유는 집을 지어보신 분들은 잘 알 것이다. 건축업자에게 집 짓는 일을 맡기신 분은 반드시 현장에 가서 지켜보아야 한다. 뉴올리언즈에서는 집 지을 때 방수처리한 수십 미터되는 통나무를 땅에 깊이 박은 뒤 그 위에 콘크리트로 기초를 한다. 왜냐하면 뉴올리언즈는 미시시피 강가의 질퍽한 진흙 뻘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집 주인은 기초를 어떻게 세우는지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 방수처리가 제대로 된 나무를 쓰는지 그 굵기와 길이는 규정에 맞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만약 콘크리트로 그 나무 기둥을 덮어버리면 그 뒤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기초공사를 잘 살펴보라는 말은 기초가 건축물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은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잘 놓았다. 그런데 이 기초가 잘못된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다른 건축자가 와서 놓여진 기초석을 몰래 파내고 흙으로 덮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짓는다면 나중에는 어떤 기초가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바울은 현재 고린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잘 지켜보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사도가 염려하던 다른 기초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유대교 율법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운 뒤에 유대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도 믿어야 하지만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또 다른 신앙의 기초를 놓으려 했을 것이다.
오늘날 악한 세력들은 어떤 기초를 몰래 놓고 있을까? 오늘날 악한 세력들은 유대교의 율법처럼 쉽게 알 수 있는 계략을 쓰지 않는다. 이들은 아주 교묘하게 다른 기초를 놓고는 덮어버린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알아채지 못한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를 약화시키고 무력화시키기 위해 새로 놓은 기초 중 하나는 역사적 예수를 찾자는 운동이다. 언뜻 들으면 좋은 운동인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끌어내리려는 운동이다. 이들은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 제자들이 꾸며낸 신화가 섞여 있으므로 신화는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를 처음 놓기 시작한 사람은 Dibelius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잘 “알버트 슈바이쳐”도 역시 같은 신학을 가졌던 사람이다. 본래 오르간 연주자였고 신학자였던 그는 복음서를 보고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었다든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은 제자들이 꾸며낸 신화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복음서에서 이러한 신화적인 요소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나니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 고아와 과부들 같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불쌍한 병자들을 치료했던 것만 남았다.
그는 이게 바로 예수의 참모습이고 복음의 참뜻이라고 깨닫고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의학을 공부해서 아프리카로 갔다. 그는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기초를 제거해 버리고 사회봉사라는 새로운 기초로 놓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미국의 많은 진보적인 교단들이 이러한 경향을 따라갔고 결과적으로 복음이 약해지고 사회봉사라는 껍데기만 남은 교회들이 되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다른 기초가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주시라는 고백이 우리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많은 한인들을 모아서 친교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냥 착하고 교양있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복 받고 잘 살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사탄은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고 영악한다. 절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말한다. “이웃을 돕는데 온 힘을 다해라.” “예수 믿으라고 함부로 외치지 말아라 거부감 생긴다. 조용히 다가가서 돕기만 하라. 다른 종교들과도 화합하라.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을지 모른다.” “친교를 최우선으로 삼아라. 친교가 잘 되어야 교회가 성장한다. 복음은 나중에 전해도 된다.” 이렇게 한발짝씩 한발짝씩 들여 놓으면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교회의 기초를 치워버리고 새로운 기초를 놓아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우린 벼랑 끝에 서있고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라는 것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우리 교회에서 복음을 제거하고 한인 친교단체로 만들려 한다든지 사회 봉사단체로 만들려 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못하게 해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이시요 구세주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울사도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잘 지켜보라고 한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