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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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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전서 1:19-21

어리석게 들리는 선포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2. 20.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1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19-21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폐하시고 말 잘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유대교 율법학자들이나 둘 다 갖추고 토론을 잘하는 사람들이나 다 바보로 만드시고 어리석게 들리는 선포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십자가의 말씀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19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이사야 29장 14절 하반부를 인용하며 자신의 비전의 근거를 제시한다. 이 구절은 예언이다. “멸망시킬 것이고, 폐할 것이다.”라는 말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폐한다는 말은 70인역 구약성서에서는 숨긴다는 말로 되어 있는데 바울은 폐한다는 말로 바꾸어 놓았다.

어떤이는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꾼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다수는 바울이 의도적으로 바꾼 것으로 설명한다. 바울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 70인역과 약간 다른 사본을 인용했을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시편 33:10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면서 바울이 문맥에 적합하도록 조정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머지 부분은 똑같고 마지막 단어만 다르게 때문에 대부분 바울이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바꾼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바울이 자신의 마음대로 바꾸었다기 보다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보고 마지막 단어만 바꾸어서 인용한 것으로 본다. 바울은 70인역 구약성서에서 번역한 마지막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의 본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원래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70인역의 번역처럼 감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얼굴을 감추셔서 관계를 단절하는 장면에서도 여러 차례 쓰였다(신 31:17-18; 32:20; 사 59:2; 겔 39:23-24; 미 3:4; 시 13:1; 27:9).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돌리신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지혜있는 자란 뜻은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는데 탁월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총명한 자들이란 지적이고 현명해서 세상물정에 아주 밝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잘나고 똑똑해서 잘 나가는 소위 제 잘난 맛에 사는 모든 교만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안면 싹 바꾸고 고개를 돌려버림으로 완전히 무시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완전히 무시하여 폐한다는 뜻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20절은 3가지 수사학적 질문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현명한 자가 어디 있느냐?”

“도대체 율법학자가 어디있느냐?”

“도대체 변론자들이 어디 있느냐?”

현명한 자란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Sophist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음 질문인 개역에서 선비로 번역하고 새번역에서 학자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복음서의 “서기관”과 같은 단어이다. 이는 유대교 율법학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린도 교인들 중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최고 지성인들과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최고 지성인들을 모두 말하는 것이다. 현명한 자란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던 사람들을 말한다. 이는 전달 방법에 탁월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반면에 율법학자는 하나님에 관한 지혜에 탁월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22절의 유대인들은 기적을 달라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한다는 것과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이러한 의미가 분명해진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 두 종류의 성도들 모두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 질문은 이 시대의 변론자들이 어디 있느냐는 뜻이다. 학자인 동시에 토론을 잘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토론에 아주 능한 사람들이었고 유대교 율법학자들은 탁월한 지혜를 가졌던 학자였기에 세번째 질문은 이 두 종류 지성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다 갖춘 최고의 지성인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하버드의 로스쿨 교수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권 변호사인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바울은 이 세가지 질문 뒤에 이렇게 세상에서 최고로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바보로 만들지 않았느냐는 라고 다시 묻고 있다. 19절의 이사야의 예언은 미래의 형태로 이루어진 반면 이 부분은 과거형으로 기록했다. 이는 19절에 말한 하나님의 예언이 이미 정확하게 성취되었음을 20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에서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을 이미 바보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자랑할만한 세상의 명예들도 모두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다 쓸모 없다는 것이다.

21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라고 말한다. 여기서 세상이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합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유대인 율법학자들이나 탁월한 변론가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지혜 안에 있으면서 자기들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려고 했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계획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하는 십자가의 어리석은 메시지를 통해서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고 이것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이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라는 것이다. 예언과 그 예언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경고이다.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빨리 깨닫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마치 허리케인이 이곳에 온다고 했는데도 피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미 카테고리 4의 허리케인 Gulf Coast에 도착했다는 말과 같다. 이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신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에게 십자가의 메시지로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이미 너희들은 완전히 무시당하는 미련한 바보라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세상의 지혜를 배설물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 자체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지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귀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배설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대한 경고 이기도 한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를 보면 모두 서로 높아지고 존경받으려는 욕구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세상의 것을 억지로 다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전력을 다해 가지려고 했던 것들이 배설물처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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