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침례를 주라는 것이 아니고 세상적인 연설 기술이 아닌 순수한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셨는데 이는 십자가를 무효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가이오 외에는 침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그 결과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침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스데바나의 가족 외에는 침례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침례를 주라고 보내지 않았고 오직 세상적인 연설기술로 하지 않은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셨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내용이다.
17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왜 바울 자신은 침례를 많이 주지 않았는지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17절을 잘 못 해석하면 침례와 같은 성례전과 복음전파 사역을 구분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바울은 침례를 중요시하지 않았기에 하지 않았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의 요점은 당시 유명했던 바울에게 침례를 받았다고 자랑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높이려던 것을 반대하며 말한 것이다. 성례전 사역과 설교 사역을 구분하는 대조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해석이다. 당시엔 주의 만찬과 침례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침례를 주지 않았다고 한 것은 바울을 통해 침례 받았다고 자신들을 높이지 못하게 하려한다는 뜻이다..
성례전 사역과 설교사역을 구분하는 대조로 보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은 바울 당시에는 침례와 복음 전파를 구별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26절에서 주의 만찬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주의 만찬의 의미를 주님의 죽으심을 주님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께서 행하신 주의 만찬이 기록된 공관복음을 보아도 예수께서 하신 주의 만찬의 의미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 자신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누가는 고린도전서와 마찬가지로 기억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본래 주의 만찬의 의미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복음 전파하라는 의미이지 그 성례전 자체로 거룩해지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침례도 역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바울 시대에서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다는 복음을 전하는 교육자료의 역할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4세기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고 성직자 중심의 성례전이 고착화되면서 그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성례전을 복음 전파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침례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사람이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실제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부활을 실제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1세기 기독교 교회에서는 침례와 복음 전파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은 침례를 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직접 침례를 받은 것을 자신들의 계급장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여기서 바울은 침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명한 바울에게 직접 침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자랑하며 자신들이 교회에서 존경받는 높은 위치에 서려고 했던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 다음에 침례와 대조되는 말로 복음을 전파한다는 말이 나온다. 원어에서 복음을 전파한다는 말 바로 뒤에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했다는 말은 복음 전파한다는 말을 수식하는 말이다. 영어나 그리스어와는 달리 한국어에서는 수식하는 말이 앞에 와야 하기에 말의 지혜로 하지 않은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의 지혜라는 것은 본래 고대 그리스의 연설하는 기술을 뜻하는 말이다. 고대에는 아주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BAGD 사전에는 "cleverness in speaking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이는 이 단어의미를 훈련받은 고급스러운 연설기술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말의지혜는 훈련된 웅변술과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고급스러운 연설 기술을 뜻하는 말이다.
바울이 말의 지혜에 근거하지 않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그 도시의 고위층 귀족들이 많이 교회에 나왔고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가 되어 자신들의 철학적 지식과 연설 기술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하고 배움이 없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조차 무시당했을 것이다. 물론 바울도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에 고대 그리스의 최고 학문을 근거로 설교하고 가르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시킨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그런 귀족층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침례를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고 또한 특권층들을 위해 세련된 논리와 연설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잘사는 귀족들과 가난한 서민들사이의 갈등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0-17절의 내용은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합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서로 파벌 조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갈기갈기 찢는 것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세상적인 지식과 세상적인 지위와 세상적인 명예의 기준을 따라 높아지려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좀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섬겨야 한다. 세상적으로 남보다 못한 위치에 있다고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의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