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4-16 바울은 그리스도와 가이오 외에는 침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그 결과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침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스데바나의 가족 외에는 침례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클로에의 사람들에게 소식을 들어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폴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며 그리스도가 갈라질 수 없고 바울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도 아니고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침례를 준 적이 없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1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감사의 내용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 그리스보는 사도행전 18:8절에 나오는 회당장일 것이고 가이오는 로마서 16:23절에 나오는 바울과 교회를 돌본 사람으로 해석한다. 이 말은 바울이 특별히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침례를 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는 유대인들 중 아주 존경 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가이오는 로마서 16:23절에 나오는데 아주 큰 부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둘 모두가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전도한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 모두 많은 존경을 이미 받았던 사람들이고 존경을 쟁취하기 위한 파벌 싸움에는 가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14절은 13절과 연결해서 질문한 것이기에 13절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13절에서 바울은 좀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정확히 번역하면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질문이다. 또 이어지는 질문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라는 질문도 당연히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듭났다고 또 한 목소리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15절은 바울이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침례를 주지 않은 결과를 말한 것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내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내 이름으로" 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내 이름 안을 향해서 들어간다는 뜻이다. 바울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의 들어가는 출입구가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어느 목사에게 침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 목사가 거듭나게 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거듭난 것이다. 침례 받을 때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죽듯 우리가 그와 함께 죽었다는 뜻이고 다시 물위로 올라오는 것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침례를 준 사람에 의해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16절에 보면 스데바나 집사람에게 침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모르겠다고 했는데 고린도전서 16:15에 보면 스데바나의 집을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했다. 아가야는 아테네와 고린도 같은 그리스 남부지방을 가리키던 말이다. 이 모두 바울이 고린도에서 처음 사역할 때 전도하고 침례를 주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초기에 전도한 사람들이고 현재는 교회를 떠났거나 이들은 교회 분열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 자신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파벌싸움의 근본 원인은 교회 안에서 존경을 받으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존경을 받기 위해서 서로 높은 자리에 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0장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의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교회 안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겸손히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교회 안의 분쟁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