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고린도전서 › 1:11-13

Dawn Word

고린도전서 1:11-13

네 파로 나뉘어진 고린도 교회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2. 16.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1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1:11-13 바울은 클로에의 사람들에게 소식을 들어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폴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며 그리스도가 갈라질 수 없고 바울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도 아니고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한 것은 모두가 다 같은 말을 하고 찢겨 나뉘어진 채 방치하지 말고 즉시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봉합하여 다시 한 몸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분쟁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며 여러 파로 나뉘어진 것을 책망하는 내용이다.

11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10절에서 같은 마음과 같은 판단으로 봉합수술을 받으라고 한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너희에 관해서 내게 분명히 알려졌다는 것이다. 들렸다 또는 전해주었다로 번역한 말은 말을 들었다는 표현보다 훨씬 강한 표현으로 명백해졌다는뜻이다. 이미 소문으로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는데 정확한 정보를 듣고나서 너희들의 분쟁에 관해 아주 명명백백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원어에서는 이에 이어서 "내 형제들아!" 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전적으로 사도적인 권위를 가지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된 형제들이라고 다정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호소한 뒤에 바울은 너희에 관한 소식은 소문으로 대충 알고 있었는데 클로에의 사람들을 통해서 명명백백하게 알게되었다고 했다.

클로에는 당시 고린도 사람들이 들으면 금방 알 만큼 유명한 지중해 연안의 큰 무역상이었을 것이다. 클로에의 사람들이란 클로에 가문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당시 풍습으로는 보통 아버지가 죽었다고 해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집에 속한 가족들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클로에의 사람들이란 클로에라는 여인이 운영하던 사업 관계자들이거나 대리인들이거나 노예였을 것이다. 클로에가 에베소의 여성 사업가일 것이다. 클로에의 사람들이 사업차 고린도에 출장갔다가 돌아와서 바울에게 자세한 소식을 들려준 것이다.

11절에서 분쟁으로 번역한 말은 10절의 분열이나 분쟁으로 번역된 말과는 다른 말이다. 10절의 분열이나 분쟁으로 번역된 말은 이전에 설명한 것처럼 찢겨졌다는 뜻이기에 그리스도의 몸이 여러 조각으로 찢겨진 것을 나타내는 그림언어이다. 그러나 11절의 분쟁이라는 단어는 사소한 말다툼이 아니라 파괴나 분열이나 전쟁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에는 말싸움 뿐 훨씬 더 정교한 전투전략을 포함하는 말이다. 파벌 형성하고 세력 다툼을 하고 상대편과 전쟁을 하면서 뒷담화하고 거짓말까지 조작하여 유포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이 말은 분쟁이라는 단수가 아니라 분쟁들이라는 뜻이기에 아주 심각한 공동체적 균열이 생긴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 소식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졌다는 것이다. 첫번째로 바울파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처음 세웠을 때 맨 처음 전도했고 바울에게서 직접 배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바울의 설교와 가르침의 영향을 직접 받은 사람들이고 바울을 도와 고린도 교회를 세운 교회의 창립 멤버였을 것이다. 이들은 숫자는 적었지만 창립 멤버였기에 주인의식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새로 나온 사람들은 이들보다 사회적 신분으로는 나은 사람들이었기에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에 서로 충돌했을 것이다.

두번째 분파는 아폴로파이다. 바울이 떠난 후 아폴로가 목회했을 것이다. 아폴로가 목회할 때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사람들은 처음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세운 사람들보다 더 학식이 있고 사회적 지위도 나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는 아폴로를 통해서 아폴로파를 짐작할 수 있다. 아폴로는 탁월한 언변에 그리스 철학과 수사법으로 잘 교육받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아주 호소력있는 연설가였다. 따라서 아폴로를 따르던 사람들도 언변과 수사법에 능한 지식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폴로에게는 문제가 없었겠지만 아폴로의 추종자들은 아폴로식의 지혜와 언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들은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지도자들이었기에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존경받는 자리에 서려 하고 가르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과 충돌했을 것이다.

세번째 분파는 게바파이다. 게바는 베드로의 아람어식 이름이다. 베드로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제롬의 전승에 따른다면 베드로가 42-43년쯤 로마를 방문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후에 고린도를 방문했을 가능성도 약간은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 일부 사람들은 베드로가 더 권위있는 사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베드로에게 편지로 질문했을 가능성도 있다.

베드로는 바울에 비해 더 유대화된 사람이었다.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교와 바울의 기독교의 중간쯤의 노선에 섰을 것이다. 베드로를 따르던 고린도 교회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거나 유대교를 추종하고 가르침을 받던 그리스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교육을 많이 받은 지식인들은 아니지만 유대교 회당을 통해 잘 훈련 받은 신앙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유대교적 배경의 신앙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교회 창립 멤버들이나 아폴로로부터 배운 지식인들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에 대해 열심이었던 사람이고 잘 훈련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지식은 많지 않지만 하나님에 관해서 말씀과 받은 은혜의 경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교회의 진짜 리더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다른 사람들과 충돌했을 것이다. 교회의 정치꾼들이 베드로를 자신들의 얼굴마담(figurehead)으로 사용한 양심불량의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파는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았거나 기적과 신유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명절이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신자가 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고린도로 돌아와 나중에 바울이 세운 교회에 합류하게 되고 이들은 자신들이 베드로나 바울에게 배운 사람들보다 더 높은 영적 권위를 주장했을 것이다.

이들은 극단적인 유대교적 기독교인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야고보가 고린도 교회에 파송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을 따르든 이들은 게바파보다 더 극단적인 유대교적 기독교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유대적 메시야 공동체였을 것이고 게바파보다 이방인 선교에 더 폐쇄적이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여러 파로 나뉘어졌을까? 이것은 존경을 받으려는 다툼 때문이다. AD 1세기 지중해 연안의 사회를 존경과 수치라는 두 단어로 규정짓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당시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자리를 쟁취하는 것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존경받지 못하는 자리에 선 사람들은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은 이것이 고대 지중해 연안의 독특한 관습이었던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산업혁명 이전 농경이나 목축 중심으로 살아가던 모든 나라들의 공통된 관습이었다.

우리 나라도 갑오경장 이전에는 학식이 많고 덕망이 높은 학자나 관리들이 존경을 받았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은 무시를 당했다. 인품이 뛰어나고 높은 벼슬을 했던 사람들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배우려 했다. 훌륭한 스승에게서 배우면 스승의 명예 때문에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산업화 이후 전 세계가 돈이 계급이 되었지만 고대 사회는 명예가 최우선이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 사람들도 교회에서 존경받는 자리에 서기 위해 유명한 사람들에게 배웠다는 것을 자랑했다.

이들 파벌들을 언급한 뒤 바울은 13절에서 “그리스도가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질문을 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조각 조각 나뉘어졌느냐? 라는 뜻이다. 이는 몰라서 질문한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을 들은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건 아니오” 라고 했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조각조각 찢어질 수 없듯이 교회도 그렇게 찢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 이어지는 말은 한걸음 더 나아가 좀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정확히 번역하면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질문이다.

또 이어지는 질문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이다. 침례란 물에 잠기면서 이전의 죄된 사람은 죽고 물위로 나오면서 이제 새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라는 질문은 바울의 이름으로 거듭났느냐? 라는 질문이다. 당연히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듭났다고 또 한 목소리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 목사에게 침례를 받지만 그 목사가 거듭나게 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거듭난 것이다. 침례 받을 때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죽듯 우리가 그와 함께 죽었다는 뜻이고 다시 물위로 올라오는 것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침례를 준 사람에 의해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