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25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포로 여러분을 튼튼히 세워주시며 오랫동안 감추어든 비밀을 계시하셨다.
이전 말씀은 나와 교회를 잘 도와주는 가이오와 도시의 재무관인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가 너희에게 문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문안하라는 말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감추어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비밀을 자신에게 선포하도록 하셔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튼튼히 세워주신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은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2025년 7월 18일에 아침마다 조금씩 끊어서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단 세절이 남았다. 도막도막 짧게 끊어서 현미경으로 보듯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면서도 로마서 전체를 하나의 숲으로 보는 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동안 아침마다 나눈 말씀 전체를 간단히 돌아보면서 오늘 나눌 말씀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당시 로마교회는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이 다투고 있었다. 그 다툼의 진원지는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 칙령으로 쫓겨났다가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이었다. 그들이 되돌아와 보니 자신들이 전도하고 양육한 이방인 신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로마교회에서 지도력을 되찾고자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로마서를 썼다. 자신이 목숨 걸고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되어 질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사실 돌아온 유대인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율법이 뼛속까지 배어있던 유대인들이라 율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바울 역시 지켰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러한 율법을 이방인들에게 강요하다보면 본질인 복음이 왜곡되어 사라질 위험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서의 주된 대상은 유대인 신자들이다. 그래서 1-11장은 로마교회의 유대인 신자들과 율법이 본질이 아니라 믿음이 본질이라며 논쟁을 하는 부분이다. 논쟁의 핵심은 “율법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이다. 로마교회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이방인들에게 그 믿음의 본질 위에 율법도 추가하려고 했지만 바울은 절대로 안된다고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볼 때 이 부분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중의 핵심은 8장이라고들 말한다. 종교개혁자들도 이 부분에서 개혁의 근거를 찾았다. 본인도 2012년로마서를 강해하기 이전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12장을 지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11장은 유대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며 절대로 이 믿음에 율법을 추가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다. 하지만 12:1-15:13절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모든 백성이 함께 주를 찬양하게 하라는 것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부분이 단지 오직 믿음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것으로 없어도 상관없는 부분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려는 핵심은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율법도 추가해서 이방인 선교에 심각한 걸림돌을 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복음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이 목숨처럼 지켜온 율법에 관해 그렇게 장황하게 논쟁을 하며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절대로 구원의 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핵심이 아닌 것으로 걸림돌을 놓아 이방인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11장까지 이러한 관점에서 논쟁한 이유는 12:1-15:13에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지 오직 믿음이 핵심은 아니다. 오직 믿음은 오직 율법에만 목숨 걸고 뼈속까지 율법으로 살아왔던 유대인 신자들을 설득하려는 것일 뿐이다. 내용이 길다고 핵심이 아니다. 1-11장은 사랑으로 하나되라고 말하기 위해서 유대인 신자들을 설득한 것이다. 따라서 본인은 로마서의 핵심은 12:9-21에 있다고 본다.
12:9-21에서 바울은 유대인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믿음의 형제자매 간에 사랑하라. 또 믿지 않고 핍박하는 유대인 동포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13:1-7은 더 나아가서 이방인 원수들인 로마의 권력자들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려는 로마서의 핵심이다.
13:8-10에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율법을 강조하던 유대인들에게 한 말이다. 율법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란 것은 신명기에도 나와있는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이 사실에 대해서는 예수님과 바리새파 사람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었다.
이어서 13:11-15:6까지는 어떻게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15:7-13을 보면 이렇게 사랑으로 하나되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후부터 끝까지는 존경하고 따라야할 사람들과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사람들을 구별하라며 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함께 땅끝인 스페인까지 복음 전하는 사명을 완수하자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그리스도로 하나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 원문에서 25절은 능력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새번역은 25절에 ‘능히’ 라고 번역했고 개역은 이 단어를 26절에 넣었지만 원문에서 이 단어는 25절 맨 앞에 있다. 마지막 절인 27절은 원문에서 지혜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이 두 단어를 25절 맨 앞과 27절 맨 앞에 각각 배치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이 두 단어 속에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하나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고전 1:22-24에서 유대인은 능력을 구하고 이방인들은 지혜를 구하나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이방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했기 때문이다.
먼저 바울은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능력이란 말이 1:16에도 나온다.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도 복음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이제 로마서를 끝내면서 다시 능력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이 능력은 모두를 구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제 바울은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튼튼히 세워줄 것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튼튼히 세워준다는 말은 올바른 가르침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해 준다는 말이다. 베드로후서 3:17에서는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휩쓸려서 자기의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여기서 확신이라는 말이 튼튼히 세워준다는 말과 같은 단어에서 온 것이다. 거짓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바로 튼튼히 서는 것이다. 그래서 16:17-19절에서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라고 한 겻이다. 사도행전 15:41에서도 같은 말이 발견된다. 바울과 실라가 자신들이 세운 교회들을 튼튼하게 하였다고 할 때 썼다. 바울과 신라는 교회를 세우고 나서 나중에 다시 방문하여 복음을 분명하게 가르쳤던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능력의 하나님께서 잘못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실 것을 말하고 있다.
원문에서는 25절의 이 말에 이어 튼튼하게 세워주는 세가지 근원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복음과 그리스도에 관한 선포와 감추어 두셨던 비밀이다. 먼저 나의 복음이란 바울이 선포하고 다니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메세지이다. 사실 바울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하지만 바울 자신이 전하고 다녔기 때문에 내가 전하고 다니는 복음이라는 뜻으로 나의 복음이라고 한 것이다. 본인은 나의 복음이라는 말을 바울 자신이 기록해서 여러 곳에 보낸 편지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편지들을 기록한 목적은 그 교회들을 튼튼히 서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바울처럼 나의 복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데 우리가 전하는 것이란 뜻이다. 우리가 각자 나의 복음으로 직접 복음을 전하고 서로 나눌 때 교회가 튼튼하게 서는 것이다.
두번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포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선포하는 말씀인지 분명하지 않다. 개역과 새번역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선포하는 말씀이란 뜻으로 번역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말씀이라면 예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 전하신 말씀이라는 뜻으로 복음서에 나와 있는 가르침들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나의 복음이라고 말한 바울서신과 그리스도의 선포가 나온 복음서들을 합하면 오늘날 신약성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내용들이 되는 것이다. Moule은 그의 문법책 "An Idiom-Book of New Testament Greek" 제 6장에서 속격을 설명하면서 이 부분을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오늘날 절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포로 해석하고 나의 복음과 같은 것으로 본다(. 그러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선포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분명히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말씀으로 교회가 굳게 서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세번째는 감추어 둔 비밀이다. 오랫동안 감추어 두셨던 비밀이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관한 비밀이다. 감추어 두셨다는 것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창세전부터 감추어졌던 것이 복음이 선포될 때까지 계속 감추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비밀이 이제 분명히 드러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