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19 여러분의 순종은 널리 알려졌지만 선한 일은 슬기롭게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길 바란다.
이전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걸림돌을 놓는 사람들은 경계하고 멀리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신들을 이기적으로 섬기며 그럴듯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속인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순종을 칭찬하면서도 슬기롭게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19절 앞에도 원어에는 왜냐하면 이란 말이 있다. 이는 바로 앞에 있는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이다” 라는 말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말은 조심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19절의 왜냐하면이란 말은 왜 조심해야 하는가 하면 이란 말이다. 이 말이 없으면 19절의 여러분의 순종은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다는 말이 단순히 칭찬하는 말로 오해하기 쉽다.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다 또는 모든 사람에게 들렸다는 말은 멀리 라는 말과 도달했다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로마 교회 신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멀리까지 도착했다는 뜻이다. 참 좋은 일이기에 그러므로 나도 여러분 때문에 기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칭찬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다.
19절 중간에 나오는 접속사는 영어의 but의 뜻일 수도 있고 then의 뜻일 수도 있다. 한글 개역이나 개역개정이나 새번역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접속사가 빠져 있다. 모두 then으로 해석하고 빼 버린 것이다. 영어번역도 NLT, NRSV, RSV등은 역시 then으로 보고 이 접속사를 빼고 번역했다. 하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번역들은 분명히 그러나(but)로 번역해 놓았다. 이 접속사는 분명히 그러나(but)의 뜻이다. 순종한다고 소문나서 기쁘다 그러나 다음의 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순종을 칭찬한 것은 바울이 말하려는 핵심이 아니다. 그 다음 경고를 말하기 위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의 장점을 칭찬한 것이다.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의 순종을 칭찬한 것은 맹종(blind obedience)이다. 좋기도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의 무조건적인 순종을 염려한 것이다. 잘못하면 교회가 거짓 교사들의 밥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가지를 부탁한 것이다. 하나는 선한 일에는 슬기로우라는 것이다. 선한 일이란 원래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인들에게는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엇이 옳은 일인가 판단할 때는 지혜로우라는 것이다. 정신차리고 잘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왜 선한 일에 대해 정신 바짝 차리고 심사숙고 해보라는 것일까? 진리를 왜곡시켜 파괴하려는 자들은 사람들이 무엇이 선한 일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로마교회의 예는 아니지만 그러한 예가 디모데전서 4:3절에도 나온다. 보면 거짓 교사들이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 철학과 2세기 영지주의에서도 나타나는 이교도적인 가르침이다. 혼인을 안하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거룩한 것이고 결혼은 거룩하지 못한 것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음식도 특정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 채식이 거룩한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에 없는 것이고 이방 종교들의 거짓된 거룩의 영향을 받아서 된 것이다. 카톨릭에서 신부와 수녀가 결혼을 안하고 금욕생활 한 것도 성경을 따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자들은 겉으로 거룩하게 보일 만한 것을 강조하여 그러한 거짓 거룩을 따르게 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 선한 일인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혜롭게 생각해서 구별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악한 일에 대해서는 순진하라 했다. 순진하라는 말은 아주 단순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그리스 문자의 작은 점이란 단어에서 온 것이다. 작은 점 하나도 없이 깨끗하고 단순하다 뜻이다. 무엇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함이고 진짜 거룩인지는 정신 바짝 차려야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예배당 내부를 거룩하게 꾸미고 강단을 거룩하고 권위있게 보이도록 꾸미면 그러한 것들 자체를 거룩하게 보기 쉽다. 십자가 자체를 거룩하게 보기 쉽다. 그래서 선한 일에는 지혜로우라 한 것이다.
하지만 악한 일이란 명백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명백한 악은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악한 일에 대해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으니 바로 피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탄도 악한 일을 가지고 성도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절대 속아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은 무엇이 선한 일인지 구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예를 들어보겠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 축도하기로 되어 있던 Louie Giglio 목사는 90년대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한 내용이 비난을 받자 취임식에서 축도하는 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이 동성애가 죄라고 말한 것을 악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성애를 지지한 Luis León이라는 성공회 목사가 축도했다. 동성애가 죄라고 한 목사는 나쁜 사람이 되었고 동성애를 지지한 목사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동성애를 반대하면 편협하고 악한 사람으로 본다. Chick-fil-a CEO가 동성애를 반대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 모두 분명히 더러운 죄악으로 규정한다. 사탄은 이처럼 악을 선으로 꾸며서 무엇이 선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또 오늘날 사람들은 간음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럽의 노르웨이는 1927년에 간통죄를 폐지했다. 이어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이 1930년대에 노르웨이를 따랐다. 독일은 1969년 프랑스는 1975년에 간통죄를 폐지했다. 스위스는 1989년 오스트리아는 1996년에 비 범죄화했다. 미국도 1950년대까지는 모든 주가 간통을 처벌했지만 현재는 대다수의 주에서 비범죄화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범죄가 아니다. 방송이나 영화 소설 등에서는 간통을 아름다운 로맨스로 표현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즐길 수 있는 쾌락이고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라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은 악을 선이라고 주장하고 선을 악이라고 주장해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든다.
가장 심각한 것은 기독교의 진리 자체를 비진리로 만드는 것이다. 18세기부터 유럽에서 역사적 예수를 찾자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세기초 Schweicher 와 Dibelius 라는 독일 신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전이 되었다. 저들은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 이야기는 제자들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짜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면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과 꾸며진 신화를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들은 성경 속의 기적과 치유 이야기를 다 꾸며낸 이야기로 보고 지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것은 예수께서 고아와 과부와 창녀 죄인 등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돕고 함께 교제하셨다는 것이다.
이미 신학자와 철학자요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로 바하 연구의 대가로 성공했던 슈바이처도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30대 중반에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정식 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아프리카로 간 것이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예수는 실제 예수가 아니고 제자들이 왜곡한 예수라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를 찾자고 하니 참 멋진 말처럼 보여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하지만 저들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삭제한 것이다. 만약 저들 말대로 제자들이 거짓을 만들어 냈다면 제자들은 자기들이 쓴 소설을 위해 죽은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자기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거짓말하기 위해 죽겠는가?
그 결과 유럽의 모든 교회들이 초토화되었다. 이제 유럽에는 관광지가 된 교회건물은 있어도 교회는 거의 없다. 이러한 운동은 미국으로 건너와서 계속 발전해가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의 교회들도 다 사라질 것이다. 이미 뉴욕을 중심으로 동부지역에서는 대부분 초토화되었고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주류이던 남부지역도 이제 교회는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있는 환자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제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은 편협하고 악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고 역사적인 예수가 진짜 예수라고 주장하는 선한 사람들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무엇이 선한 일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선한 일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