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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15:30-33

Dawn Word

로마서 15:30-33

죽을 위험을 안고 가면서 기도해 달라고 호소한 바울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6. 1. 23.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5장 강해 설교

로마서 15:30-33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의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또 이방인들의 구제헌금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받아들여져서 기쁨을 안고 로마교회로 가서 함께 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호소했다.

이전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인 교회의 헌금 전달하는 일을 마친 뒤 로마에 들렀다가 스페인 선교를 갈 것인데 그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방인들의 헌금이 유대에 있는 거룩한 자들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지게 해 달라는 기도와 응답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내용이다.

30절은 그러나 너희에게 부탁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부탁한다는 말은 권면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권면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은 사도적 권면과 부탁의 중간입장에서 단순한 부탁을 넘어선 절박한 요청이나 호소로 이해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단순한 부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도적 권위로 권면하는 것도 아닌 절박한 호소로 볼 수 있다. 바울은 목숨을 걸로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울 자신과 로마 교회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 모두 함께 공유하고 있는 두가지 공통점을 근거로 호소한다.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호소하고 있다. 로마교회 성도들과 바울은 만난 적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주를 모시고 있기에 한 형제 자매라는 것이다. 그 다음엔 성령의 사랑을 힘입어 부탁하고 있다. 성령의 사랑이란 자신의 감정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행하는 사랑이다. 바울이 앞에서 사랑의 동심원을 넓혀 이방인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한 그 사랑이다. 감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그 사랑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함께 순종해 나가고 있기에 이렇게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공통점에 근거해서 호소한 것은 바울 자신과 함께 바울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 달라는 뜻이다. 원어에서 열심을 내 달라는 말은 본래 함께 싸워달라는 뜻이다. 이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모습이 아니라 2인조 태그 매치 레슬링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 태그 팀은 실제 두 사람이 아니라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이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함께 힘을 합해서 온 힘을 싸워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함께 기도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것이다. 함께 온 힘 다해 경기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다면 함께 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1-32절은 구체적인 세가지 기도제목들이다. 첫번째 기도제목은 유대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화를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란 불순종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로 보냈는데 이런 메시야 말고 다른 메시야 달라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대드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예수님을 죽였는데 그들은 바울도 죽이려고 이를 갈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런 자들에게 죽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조해주시길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저들은 바울이 전에 그랬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보는대로 잡아 죽이려 했다. 바울이 이방지역에서 전도하러 다닐 때에도 죽이겠다는 결사대가 따라다녔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간다면 바울을 죽이려는 자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셈이다.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 죽지 않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죽을 각오를 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가득한 소굴로 들어가는 것이다.

두번째 기도제목은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구제금이 그곳 성도들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을 도와주려고 헌금을 모아서 가져가면서 왜 이런 기도를 해달라고 할까?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의해 생각해봐야 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유대인 크리스천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도행전 21:20 뒷부분에 보면 "당신이 보는 대로, 유대 사람 가운데는 믿는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모두 율법에 열성적인 사람들이다" 라는 말이 나온다. 수만명이나 되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모두 율법에 열심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21:21-22절을 보면 유대인 크리스천들 조차 바울의 율법 없는 선교에 적대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서 걷어온 구제헌금을 예루살렘의 거룩한 사람들이 받는다면 수만명의 유대인 신자들도 예루살렘 거룩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상당수는 어쩌면 믿음에서 떠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이 없는 유대인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과 믿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유대인들은 대부분 주변의 압력에 의해 율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을 유대인들은 바울이 율법을 지킬 필요 없다고 했다며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씌우지 말라는 것이지 율법을 목숨처럼 지켜온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바로 앞에서 그러한 약한 자들을 용납하고 포용하라고 한 것이다.

이런 적대감이 가득한 상황에서 바울이 가져온 구제헌금을 받는다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는 심각한 핍박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28절에서 바울은 이 구제헌금에 이방인들이 보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자신의 봉인으로 진짜임을 증명하여 전달하겠다고 했다. 누가한 것인지 모르게 슬그머니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전달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방인들이 보낸 헌금이라고 분명히 밝힌다는 것이다. 만약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 헌금을 받는다면 그들도 바울처럼 이방인들을 한 형제 자매로 취급한다는 의미가 된다. 바울은 이 구제헌금을 통해 유대인 크리스천과 이방인 크리스천 사이의 화합을 이루려 한 것이다.

반대로 만약 예루살렘에 있는 거룩한 자들이 바울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에게 걷어온 구제헌금을 거부한다면 이방인 크리스천들 입장에서는 심각한 모욕인 셈이다. 부정하다고 안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대인 크리스천들과 이방인 크리스천들은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셈이다. 그러면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영원한 결별이고 각각 다른 종교처럼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로마교회도 완전히 분열될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의 거룩한 자들이 이방인 크리스천들의 구제헌금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나면 이방인 크리스천들은 유대인 크리스천들을 로마교회에서 쫓아낼 것이다. 모든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바울이 세운 모든 교회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분열이 될 것이다. 바울은 이점을 염려하여 구제헌금이 받아들여지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헌금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그래서 함께 기도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32절은 그 결과를 말한 것이다. 그렇게 헌금이 받아들여진 결과 바울은 하나님 뜻에 따라 기쁨을 안고 로마교회에 가서 로마교회 성도들과 함께 편안히 쉴 수 있게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32절은 새로운 기도제목이 아니라 두번째 기도제목이 이루어 진 결과를 말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당시 바울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루살렘의 거룩한 자들이 이방인 크리스천들의 구제헌금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이는 독일이 통일되었다는 소식과도 같은 것이고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되었다는 소식만큼은 충격적인 소식이고 기쁨인 것이다.

만약 구제헌금이 받아들여진다면 당시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는 빵빠레와 폭죽이 울려 퍼지고 온갖 색종이들이 온 하늘을 뒤덮을 만큼 기쁜 일이다. 이는 유대인 크리스천과 이방인 크리스천 사이에 화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소식을 안고 가서 이 기쁨을 로마교회 성도들과 함께 나눈다면 큰 기쁨이 넘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이다. 33절에서 평화의 하나님이라 한 것도 바로 이처럼 유대인 크리스천과 이방인 크리스천 사이의 화합을 소망하며 기원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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