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7-19a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관한 자랑을 항상 갖고 다니는데 이방인들을 복종하게 하기 위해 바울 자신을 통해 이루어 주신 표징과 이적의 능력 즉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신 것만 자랑하겠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로마서의 핵심 내용을 끝낸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지식이 넘쳐서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칭찬하면서도 이러한 내용을 앞에서 쓴 이유는 바울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은혜를 통하여 로마 교회 성도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여 함께 이방 사람들을 전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17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글 번역이나 영어 번역이나 모두 그러므로 라는 말이 원어 그대로 있다. 이방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한 제물이 되도록 해야 하므로 라는 뜻이다.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는 자랑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앞의 제사를 돕는 장면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제물로 드리는데 바울이 옆에서 도왔다면 무엇을 자랑해야 할까?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자랑했다고 했다. 새번역은 NIV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에서 자랑이라는 말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이다. 원어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계속 갖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현재형이기에 계속해서 언제나 자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거룩한 제물로 받으신 일에 대해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해서 언제나 자랑을 갖고 다닌다는 뜻이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린 것을 자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17절에서도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라고 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자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절대로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믿는 자들은 우리가 전도했을 때 그 사람이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기뻐 받으셨다는 것을 자랑해야 한다.
이어서 18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바울은 왜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랑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아무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다는 말로 이어간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직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신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자랑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이런 말이다. 필자가 교사로 재직할 때 리코더 합주 지도를 했다. 그 때 필자가 가르친 학생들이 충청남도나 대전광역시 학생음악 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상을 받았다. 전국 학생음악 경연대회에서도 금상과 은상을 받았다. 그 때 본인이 가르친 학생들은 우리가 금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깊은 산골 광산촌 학교에서 한 학년이 60여명 밖에 안되는 학교에서나 대전광역시의 변두리 학교에서나 상관없이 본인이 가르친 아이들은 늘 금상을 받았다. 그럴 때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학생들이 잘해서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모두가 다 선생님 잘 만나서 그렇다고 말했다.
바울이 나를 통해서 이방인들을 복종하게 하셨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하나님 앞에 복종하여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전했을 뿐이고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흠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옆에서 도운 것 뿐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 받으신 것을 자랑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바울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일만 말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8절 끝부분에 보면 그 일은 말과 행동이다. 말이란 바울이 말씀 선포와 가르침을 통해서 전한 것이다. 말이란 가르침을 귀로 듣게 한 것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행동이라는 말은 그 가르침을 눈으로 보게 한 것이다. 19절 첫 부분을 보면 그 행동은 표징 또는 표적(signs)으로 번역된 말과 이적 또는 기사(wonders)로 번역된 이 두가지의 능력이다.
표적이란 특별히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가리키고 기사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 표적이란 어떤 메시지를 가리키고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가리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고 기사란 기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현상적 감각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두가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한 뒤 그 말씀을 눈으로 보게 하고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뜻한다. 표적이 나타난 기적에 초점이 있다면 기사는 그것에 대한 반응에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자연과 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이 두가지의 능력이 곧 성령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말은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기적들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말로 전한 뒤 보여준 기적들을 의미하면서 이는 또한 이방인 선교사로써 행동으로 보여준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5-7장에서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그 뒤 8-9장에서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기적은 앞에서 가르치신 말씀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전한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바울은 말로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실제로 약한 형제들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것이 말에 뒤 따르는 바울의 행동이다. 또 사도행전 19:18절에 보면 서원한 것 때문에 머리를 깎은 것도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사도행전 14:7에 보면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 뒤 선천적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켰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다는 말을 전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믿느냐 떠들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준 것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다. 또 배가 파선해서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것도 말로 전한 하나님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바울이 경험한 가장 놀라운 기적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것이다. 또 바울은 환난 중에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말만 하지 않았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도 기쁨의 찬송을 불렀다. 그러자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여기서는 바울의 행동과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나타납니다.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여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도 표징과 이적의 능력이다. 또 그리스도를 살리신 능력의 하나님을 전한 후에 기적을 보여 준 것도 표징과 이적의 능력이다. 때로는 이 두가지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행동인데 말로 전한 복음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바울의 행동들은 바울이 전한 말에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4세기에 살았던 크리소스톰도 이 구절들을 동영상으로 이해하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울의 사도적 제사장직의 표징은 옛 시대처럼 긴 옷자락과 bell도 주교의 모자나 터번도 아니라 이런 것보다 훨씬 훌륭한 표징과 이적이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말씀을 옷차림과 제단 향 내음 등으로 보여주었다면 바울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말로 전하고 행동으로 그 말씀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행동들은 말씀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행동만으로는 구원의 뜻을 가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전할 수 없다. 오직 말씀만이 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행동은 말씀을 확증하는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말씀을 증거하고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가 전한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