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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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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로마서 15:13

기쁨과 평화가 공동체의 믿음안에 넘치길 바란다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6. 1. 15.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5장 강해 설교

로마서 15:13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너희 모두의 믿음의 그릇에 모든 기쁨과 평화를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성령의 능력이 그 소망 안에 넘치길 바란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할례자의 종으로 섬기신 것은 유대인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과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을 구약 성경 네 곳을 인용하며 증거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믿음 안에 있는 기쁨과 평화를 채워주셔서 그 결과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13절 첫부분은 원어에서는 "그러나" 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말이 연결이 안되기에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도 그냥 의미 없는 접속사로 보고 생략했다. 이어서 소망의 하나님께서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12절 끝 부분에 나타난 이방 사람이 그리스도께 소망을 둘것이라는 말과 연결해서 하는 말이다. 이 접속사는 앞의 것과 구별되는 어떤 새로운 전환을 표시한다며 신약성경에서 소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그러나 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구약에만 나타난 소망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로마교회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모두에게도 주신 예언이라는 것이다.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난 그리스도를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길 바란다는 것이다.

소망의 하나님이란 말이 하나님이 소망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충만하게 해 주신다는 말은 그릇이 포도주나 기름 같은 것을 채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채우는 그릇은 원어에서는 "믿는 것" 이라는 말이다. 새번역은 믿음에서 오는 것으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믿는 것이 그릇이고 그 안에 기쁨과 평화를 넘치도록 부어주신다는 뜻이다.

NIV나 NLT같이 의미를 살려 번역하는 영어 번역들은 너희가 그 분 안에서 믿는 것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다수의 영어 번역들은 "in believing" 이라고 원어 그대로 번역하며 기쁨과 평화가 채워지는 그릇이 믿는 것으로 보았다. NIV나 NLT는 그 믿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you trust in him" 으로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너희는 로마교회 라는 공동체이기에 그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 믿는 것이라는 공동체의 믿음의 그릇 안에 기쁨과 평화를 가득 넘치게 채워주시길 기원하는 것이다. “충만하게” 란 말은 그룻에 포도주나 기름같은 것을 채우는 것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 채우는 그릇은 믿는 자들 개인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공동체 전체 즉 교회를 말한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기쁨과 평화를 교회 공동체 안에 가득 채워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길 바라는 소망과 겹쳐지는 그림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치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처럼 돌아오길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망은 시간이 흐르면 약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이 소망이 가득 채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란 우리가 복음 전할 때 나타나는 표적과 놀라운 일들을 말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할 때 표적과 놀라운 일을 체험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우리의 소망은 약해지지 않고 분명해지는 것이다.

앞부분과 이어지는 내용을 다시 본다면 우리 대신 돌을 맞으시며 우리를 업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영광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번엔 문 앞에 수건을 두른 채 무릎 꿇고 앉으셔서 하나님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유대인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낮은 종의 모습으로 놀림감이 되시면서 유대인들을 섬긴 것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유대인들을 통해 이방인들까지 다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소리 높여 찬양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그 동안 그리스도처럼 약한 사람들을 업고 갔다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하나님 영광의 입구에서 수건을 두르고 사람들의 발을 서로 씻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망을 마음에 품고 이 소망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 기쁨과 평화가 가득 차고도 흘러 넘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불평을 쏟아낼까? 그것은 우리가 업고 가다가 내려 놓은 사람들 위에서 어른 노릇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너 업어준 값 내놔!”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마음에 교만한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를 업고 가셨고 또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문 앞에서 종의 모습으로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모습을 잊었기 때문이다.

교회 일을 하면서 왜 자꾸 힘들다고 할까? 소망이 없거나 처음에 가졌던 소망이 자꾸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 소망은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난 예언을 봄으로 찾을 수 있다. 성경을 통해서 날마다 소망을 확인할 때 믿음의 공동체 전체에 기쁨과 소망이 차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힘들어도 기뻐할 수 있다. 따라서 말씀이 없으면 소망도 없다.

전에는 분명한 소망이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소망이 흐려지고 기쁨과 평화가 약해지거나 사라지는가? 말씀에 집중하지 않으니 말씀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공동체 안에서 체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보고 소망을 갖는다 해도 자신만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공동체 안의 형제 자매의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래 믿음 생활 한 사람들에게 소망이 흐려지고 기쁨과 평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쉽과 용서해주시는 사랑을 잊어버렸을까요?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데는 관심이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업고 가고 종의 자세로 섬기는 일에는 소홀한다.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로마서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 많은 해석자들이 로마서의 핵심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에만 두었다. 본인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로마서의 실제적인 부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전체를 돌아보니 로마서의 핵심은 개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강조한 것은 돌아온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강조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 또 뒷부분에서는 이방인들의 문제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낮은 자세로 서로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목적은 모든 백성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로마서의 핵심이다.

물론 개인의 경건을 추구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만 깨끗해지려는 생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우리 자신만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이제 서로의 더러움을 무릎 꿇고 앉아 닦아줌으로 함께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절대로 높은 자리에 서서 수건을 던져주며 난 깨끗한데 네 발은 더러우니 물로 발을 씻고 이 수건으로 닦으라고 명령하면 안된다. 이러한 교만은 공동체의 평화와 기쁨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만 거룩하다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의 문 앞에 서서 사람들을 못 들어가게 한다. 먼저 구원 받고 거룩함을 입은 사람이 다른 형제 자매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발을 씻어주는 교회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안에 믿음 안에서 오는 기쁨과 평화가 차고도 넘칠 것이다. 그 기쁨과 평화가 교회 안에 넘쳐 흐를 때 모두 함께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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