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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15:9-12

Dawn Word

로마서 15:9-12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들도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6. 1. 14.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5장 강해 설교

로마서 15:9-12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할례자의 종으로 섬기신 것은 유대인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과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을 구약 성경 네 곳을 인용하며 증거한다.

이전 말씀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오도록 영접하신 것처럼 서로 영접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도 할례자들의 발씻기는 종이 되셔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확증하신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찬양해야하는 증거를 구약성경 네 곳에서 찾아 제시한 내용이다.

이어서 바울은 구약성경의 네 곳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찬양해야 하는 증거들을 찾아 제시하고 있다. 9-11절에는 서로 다른 다섯 가지 동사들이 모두 찬양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들이 나온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란 말이 전체에 넘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모두 찬양한다 라고 번역했지만 원 뜻은 조금씩 다르다. 마치 합창곡이 처음엔 작은 소리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엔 웅장한 합창으로 끝나는 것과도 같이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해서 점점 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9절 첫부분의 이방 사람들도 긍휼하심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신다는 말의 해석상에 논쟁이 있다. 문장의 구조로 보면 이 부분은 8절 끝부분의 확증하시려고 라는 말에 조상들의 약속과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 병행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해 할례자들의 발 씻기는 종이 되신 것은 두가지를 확증하려는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확증하는 첫째는 8절 끝부분에 나온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둘째는 9절 첫부분에 나온 이방 사람들도 긍휼히 여김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시는 것이다.

논란은 병행구절이 헬라어 문장 구조상 매우 거칠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8절 끝 부분은 조상들의 약속이라는 간단한 구조인데 9절 첫 부분은 부정사까지 포함하는 길고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장 구조가 어색하다 해도 바울이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확증하신 것은 유대인들 조상들의 약속이며 동시에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첫째 증거는 삼하 22:50절의 다윗 왕의 승전가 중에서 나온 것이다. 다윗 왕은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들이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의 모델도 바로 다윗 왕이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메시야의 모델인 다윗왕이 한 말을 첫번째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너희들이 기다리는 다윗왕과 같은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는 말은 삼하 22:50에 있는 말이지만 또 오늘 본문 앞에서 나온 말과도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방인에게까지 확대하시기 위해 유대인의 종이 되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다윗 왕은 이방사람 가운데서 주님께 찬양을 드렸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방인들에게 확대하려 하신 것을 예언한 것이라는 것이다.

첫번째 동사는 새번역은 “찬양을 드리고” 라고 번역하고 개역은 "감사하고"로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본래 고백한다는 뜻이다. 이 단어와 같은 말이 빌립보서 2:11절에도 다음과 같이 나온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는 것이다. 첫번째 주님을 찬양 드린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 자체가 찬양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5개의 동사 중 비교적 작은 소리로 고백하는 것이다.

두번째 9절 끝부분에 나온 주님의 이름을 찬미한다 라는 말에서 “찬미하다” 또는 "찬송한다"로 번역한 단어 이다. 이 단어는 원래 현악기의 줄을 뜯으며 다같이 큰 소리로 찬양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예배 시간에 기타를 치며 찬양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앞에서 나온 고백한다는 뜻의 찬양보다 더 많은 사람이 악기 반주에 맞추어 좀 더 큰 소리로 찬양하는 모습이다.

10-12절은 계속해서 “그리고 또” 라는 말로 이어진다. 이 세 구절은 율법서 시가서 예언서에서 각각 한 구절씩 뽑아서 인용했다. 이는 구약성경 전체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함께 찬양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뜻이다. 첫번째 10절은 신명기 32:43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방 사람들아, 주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했다. 즐거워하라는 말도 역시 기쁨으로 찬양한다는 뜻인 것이다. 이방 사람들이란 유대인들을 제외한 모든 나라 백성들을 말한다. 주님의 백성이란 유대인들을 말한다. 따라서 율법서의 대표로서 신명기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가 함께 종으로 우리를 영접하신 주를 찬양하며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11절도 역시 “그리고 또” 라는 말로 이어진다. 이는 시가서의 대표로서 시편 117:1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11절에도 찬양하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뜻은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이다. 먼저 “모든 이방사람들은 주님을 찬양하여라” 라고 했는데 여기서 찬양이란 말은 원래 시편에서는 히브리어로 “할렐루” 이다. 주로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소리 높여 찬양할 때 쓴 말이다. 여기서도 모든 이방사람들이란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로 이어서 또 모든 백성들을 부르며 주님을 찬양하라고 한다. 찬양한다는 말은 바로 앞에서 찬양한다는 말보다 더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을 나타낸다. 모든 백성이란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다 함께 주님을 찬양하기 때문에 더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이다. 작은 소리로 시작한 찬양은 이제 오케스트라와 유대인 이방인 모두가 참여한 엄청난 규모의 합창단의 찬양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찬양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 최고로 큰 소리로 장엄한 찬양이 연주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원래 70인역 구약성서에서는 “찬양하여라” 라는 말이 2인칭 복수 명령형인데 로마서에서는 3인칭 복수 명령형으로 바뀌었다. 2인칭 명령어는 “너희가 해라” 라는 뜻이지만 3인칭 명령어는 “그들이 하게 시켜라”라는 뜻이다. 따라서 11절은 원어대로 정확히 번역한다면 앞부분은 “모든 이방사람들아 주님을 찬양하라” 이고 뒷부분은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이 찬양하게 시켜라” 라는 뜻이 된다. 바울은 70인역을 인용하면서 의도적으로 3인칭 명령어로 바꾸어 전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구한테 시키라고 명령하라는 뜻일까? 이는 분명히 모든 이방사람들에게 유대인들도 함께 찬양하게 시키라는 것이다. 지난 주 말씀에서 나온 강한 자였던 이방인들이 약한 자였던 유대인들을 업고 가라고 했다. 이제는 너희들끼리만 찬양하지 말고 약한 자인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지는 것을 용납하고 받아들여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시키라는 것이다.

12절도 역시 “그리고 또” 라는 말로 이어진다. 12절은 예언서의 대표로 이사야 11:10을 인용한 것이다.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나서 이방사람을 다스릴 이가 일어날 것이니 이방 사람들은 그에게 소망을 둘 것이라 했다.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이다. 바울 당시 다윗 왕가는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의 왕이었던 헤롯도 다윗 왕의 자손이 아닌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새의 뿌리 라는 말은 나무는 잘리고 썩은 그루터기만 남은 것을 말한다. 다윗 왕가는 잘린 나무처럼 망했고 그 그루터기 조차 다 썩어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썩은 그루터기의 한 뿌리에서 싹이 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이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뜻이다.

원래 다윗왕의 후손으로 이새의 뿌리에서 메시야가 날것이라는 예언은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던 예언이다. 유대인들은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왕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왕이 아닌 유대인들의 종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 초라한 모습에 유대인들은 실망하여 예수를 거절하고 처형했던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거절하고 처형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이방인들이 유대인 대신 소망을 둘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방인들이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어째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사야의 출현을 이방인들이 소망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이사야 11장을 이해해야 한다. 이사야 11장은 원래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이 돌아와 회복될 것을 바라보는 종말론적 비전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단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옴으로 이미 실현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회복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유대인들이 돌아와 이방인들과 함께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소망이 이새의 뿌리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0절에서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백성들도 함께 즐거워하게 하여라” 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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