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7-8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오도록 영접하신 것처럼 서로 영접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도 할례자들의 발씻기는 종이 되셔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확증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도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서로 받아들이라며 그리스도께서도 할례자들의 종이 되신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해준다고 말한다.
오늘 말씀 7절은 착하게도 그러므로 라는 말이 생략되지 않고 그대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라는 말은 6절의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므로 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글 번역들은 개역과 새번역 모두에 문제가 있다. 한국어와 Indo European Language가 말의 순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어에서는 그러므로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말은 "너희는 서로 받아들이라" 이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있다. 바로 앞에서는 바울 자신도 강한 자에 포함시켜 우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자신들을 제외하고 로마 교회의 강한 자와 약한 자들 모두를 너희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바울이 이미 그렇게 받아들인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앞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고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7절에서는 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약한 자도 강한 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원어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는 말이 그 뒤에 나온다. 원어의 의미는 "마치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너희들을 받으신 것처럼" 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글 번역들은 그러므로 라는 말이 "마치 그리스도께서…" 라는 종속절과 연결되는 것처럼 번역되었기에 원어의 의미가 흐려진 것이다. 원어는 6절에서 기도한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므로 서로 받아들이라고 권면한 것이다. 받아들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 이 말은 원어에서 자기 집에 온 손님을 영접할 때 쓰는 말이다. 또 어떤 공동체에서 새로운 멤버를 받아들일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서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6절에 나온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이 7절 맨 끝에 다시 나온다. 7절 맨 끝에 나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말은 원어에서 "하나님 영광 안으로" 라는 뜻이다. 이 말이 어떤 말을 꾸미는지에 대해 영어 번역들은 둘로 갈린다. 먼저 ASV나 ESV나 NIV나 RSV는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라는 말이 서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꾸미는 것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KJV나 NASB는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라는 말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영접하신 것처럼을 꾸미는 것으로 번역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라는 말이 주절인 너희는 서로 영접하라는 말을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6절에 나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말을 다시 받아서 서로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는 하나님 영광 안으로 라는 말이 종속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하나님 영광 안으로 받아들이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중도적 입장에서 바울이 의도적으로 두 동사 모두를 수식하도록 했을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6절의 반복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라는 말이 서로 영접하라는 말을 수식한다는 것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7절에서 받아들인다는 말이 갖고 있는 그림이 삭제된다. 받아들인다는 말은 본래 손님을 안으로 영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너희를 손님으로 영접한 것 같이 라는 말을 그림처럼 그린다면 7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건물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오도록 영접하시는 모습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각자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오도록 영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8절은 "왜냐하면 내가 말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바울이 구체적인 말로 설명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할례 받은 사람들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이란 말을 개역은 “수종자” 라고 했다. 따라다니며 시중드는 사람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그래서 개역개정에는 “추종자” 라고 번역한 것 같다. 하지만 추종자란 말은 또 따르는 자란 뜻인데 주로 어떤 종교나 신념을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할례교의 신자라는 뜻이 된다.
아마도 그리스도를 종이라고 낮추는 것이 민망해서 이렇게 이상한 말을 쓴 것 같다. 둘 다 원래의 의미가 달라지거나 사라져버렸다. 이 말은 분명히 종이다. 그것도 종 중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종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가정에 손님이 올 때 영접하는 사람은 종 중에서도 가장 신분이 낮은 종이 영접하는 것이다. 그 종은 손님을 영접하고 땀과 흙먼지가 뒤범벅이 된 발을 씻기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문 앞에서 너희를 영접하며 너희 발을 씻기는 종이 되셨다는 의미이기에 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너희를 영접했다는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는 분명히 할례의 추종자가 아니라 할례 받은 사람들의 종이란 뜻이다. 왜 유대인 이라고 하면 될 것을 할례 받은 사람이라고 했을까? 할례 받은 사람들 이란 말은 유대인들의 별명이다. 바울 당시 살았던 Josephus 나 Philo의 기록을 보면 이 말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나 웃음거리로 쓰인 말이다. 할례 받은 사람들이란 말 자체도 조롱거리인데 그들의 발을 씻겨주는 종이 되셨다는 말은 더 큰 조롱거리인 것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조롱거리가 되도록 유대인들을 영접하셨다는 말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실하심” 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는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분명하게 이행하기 위해 종이 되셔서 할례 받은 자들을 영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당시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영접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영접하신 것은 8-9절에 보면 두 가지를 확증해주기 위해서이다. 첫째 8절 뒷부분에 보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확증하기 위해서이다. 조상들에게 준 약속은 창 22:18의 세상 모든 나라가 네 자손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여러 차례 확증해주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종으로서 할례받은 자들을 영접하신 것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모든 나라 백성들에게 복을 준다는 약속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