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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15:3-4

Dawn Word

로마서 15:3-4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주님의 본보기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

봉인된 두루마리 편지와 로마로 이어진 길 · 로마서 1장

2026. 1. 10.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5장 강해 설교

로마서 15:3-4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기에 시편의 예언대로 하나님을 비방하는 비방이 자신에게 떨어진 것이라고 기록된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고 성경에 기록된 인내와 위로로 소망을 주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바울 자신을 포함하여 강한 자들인 우리는 약한 자들을 짊어지고 가야 하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약한 자들을 기쁘게 해주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기둥으로 세워지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약한 자들을 짊어지고 가는 본을 보이셨고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3절도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믿음이 강한 자를 뜻하는 우리가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기쁘게 해준다는 말이 3절에도 나온다. 1절의 “좋을대로” 나 2절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와 3절의 “좋을대로”는 모두 원어에서는 똑같은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대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도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약한 자들을 업고 가심으로 본을 보이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셨다고 말한 이유는 모두 그 본보기를 따르라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23-11:1에서도 오늘 본문과 같이 음식문제로 권면하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 바울도 분명히 그리스도의 본을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0:33에 보면 바울 자신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쓴다며 바울 자신도 자신의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 자신도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고 말한 뒤 바로 이어서 시편 69:9절을 인용한다. 그런데 그 말씀이 좀 엉뚱하다. 그 내용은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라는 것이다.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오니디조"인데 어쩌면 "오! 니 뒤저!" 라는 한국어에서 온 말인지도 모른다(심각하지 마시길). 같은 말을 두번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특별히 강조하는 표현이다.

주님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어에서는 “당신”이다. 새번역과 개역은 당신이라는 대명사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견해에 일치한다. 원래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을 당신이라고 부른 것이다. 하나님 당신을 비방하는 비방이 시편기록자 자신에게 떨어졌다는 뜻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시편을 그리스도에 비추어 재해석했다. 하나님 당신을 비방하는 비방이 예수 그리스도께 떨어졌다 라는 예언으로 해석한 것이다.

시편 69:9절에서 당신이라는 대명사는 하나님이지만 바울은 여기서 바울이 자유롭게 적용한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받을 고난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비방을 대신 짊어지셨다는 것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사야 53:4절의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이라는 내용을 인용했을 것이다. 이 구절이 훨씬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그리스도께 떨어졌다 라는 것이 분명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란 무엇일까? 예수님 당시나 바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유대인 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유대인 중에서도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율법을 어기는 자들은 유대인이라도 유대인으로 취급하지 않고 죄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시의 약한 자들이었던 죄인들과 세리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등에 업고 가신 것이다. 그러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하고 놀라운 기적을 행했을 때 귀신의 왕의 힘을 입어 능력을 행한다고 한 것이다. 졸지에 하나님이 귀신의 왕이 되신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은 유대인 중에서도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만의 하나님이라고 단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능력을 행하시며 가르치셨던 하나님을 비방했던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하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을 칭찬하면서 그들과 함께 교제하고 그들에게만 능력을 베푸셨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저들이 멸시하는 죄인들을 업고 가셨기에 귀신들렸다고 욕을 먹은 것이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도 예수의 뒤를 따르라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약한 자들을 업고 가라는 것이다. 로마교회 강한 자들은 예수님 말씀과는 달리 율법에 따라 부정한 음식을 가려내고 절기를 지키는 자들을 멸시했던 것이다. 마치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죄인들을 멸시한 것처럼 말이다. 만약 로마서 14:3절처럼 서로 업신여기고 비판한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다시 또 못 박는 것이라는 것이다.

4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라는 것이다. 전에 기록한 것이란 구약성경을 말한다. 특히 바울이 인용한 구약성경 구절들을 가리킨다. 자신이 인용한 모든 구약의 구절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서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고 한 것이다.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란 원어에서는 "인내를 통하여 또 위로를 통하여 성경에 있는" 라는 뜻이다.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의 지상사역과 관련지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모두에게 비난 받는 죄인들을 등에 업고 걸어가신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수께서 업고 계셨던 죄인들이 받아야 할 욕까지 다 받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등에 업으신 셈이다. 그러다보니 그 여자가 맞아야 할 돌을 다 맞으신 것이다. 지상사역 내내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등에 지고 다니신 셈이다.

스스로 의인이라 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죄인들을 업고 다니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침 뱉고 돌을 던진 셈이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내용들은 침 뱉음을 당하고 돌에 맞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러자면 인내가 필요했다. 사람들의 비난을 인내하면서 수많은 죄인들을 무겁게 지고 가신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예수님은 고개를 돌려 등에 업혀 있는 사람들을 위로한 것이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도 바로 예수님 등에 업힌 죄인들을 위로하는 내용인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에 나타난 죄인들만 업고 가신 것이 아니다. 죄인 중의 죄인인 오늘날 우리 모두도 업고 가신 것이다. 역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비난을 다 받으시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등에 업혀있는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라는 것이다. 죄인들을 힘겹게 업고 비척비척 한걸음씩 떼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라는 것이다. 본인이 이전 말씀에서 나눈 것처럼 초등학교 3학년짜리 예슬이를 업고 지리산을 올랐을 때 저도 무척 힘들었다. 예수님은 예슬이보다 훨씬 무거운 죄인들을 모두 지고 가시느라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씩 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그냥 따라 가지 말고 우리도 예수님을 흉내내야 한다. 힘들지만 인내하면서 약한 사람들을 업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이 가르쳐주는 인내로 인내하면서 우리 등에 업혀있는 약한 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라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서 소망을 가지게 하라는 것이다. 이 소망은 로마서 14:17절처럼 약한 자나 강한 자,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함께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인 것이다.이 소망을 단단히 붙잡게 하려는 것이 바로 성경말씀들이란 것이다. 우리 모두 성경말씀에 집중함으로 이 소망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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