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13-15 남을 심판하지 말고 먼저 자기 자신이 형제자매에게 걸림돌을 놓고 있지 않는지 자기 자신을 심판하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음식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다 하셨으니 음식으로 형제 자매를 분노하게 하여 그 사람이 믿음에서 떠나 멸망하게 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 말씀에서 우리가 서로 믿는 방법이 다르다고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모두 다 사실대로 보고해야 할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형제자매를 심판하지 않을 수 있는지 말하면서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판단하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된다. 그러므로가 연결하는 말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사람들이고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 자매를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므로 라는 것이다. 14:13-22절에 나타난 큰 그림은 집을 짓는 그림이지만 그 안에 있는 작은 그림은 걸림돌과 음식들이다. 걸림돌과 음식은 다른 그림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13-15절에 나타난 핵심단어는 “주 예수” 이다. 주 예수의 사랑을 기준으로 심판하라는 것이다. 13절은 "우리는 서로 남을 심판하지 말자"는 권유로 시작한다. 원어에서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대신에 너희는 더욱 이것을 심판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을 놓지 않는 것이다.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을 놓고 있지 않는지 그것을 주로 심판하라는 것이다.
13절 앞에서 나온 심판 또는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나 13절 끝부분에 나온 주의하라 또는 결심하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같은 말이다. 따라서 너희는 남을 심판하지 말고 대신에 형제 자매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심판하라는 말이다. 똑 같은 말을 한국어로 말이 잘 되도록 의미를 살려 번역하다보니 다른 말처럼 된 것이다. 말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더라도 원어의 대조를 살려야 남을 재판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나 먼저 재판하라는 원어의 표현을 살릴 수 있다.
영어에는 영어로 말이 잘 안되도 그대로 직역한 번역으로 NASB가 있다. NASB보다 더 심하고 거칠게 직역한 번역으로 Young Literal Translation도 있다. 함께 공부하던 미국 친구들도 NASB를 "wooden!" 이라고 하며 읽기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에는 아직 그러한 번역이 없다. 개역이나 개역개정이나 새번역이나 모두 대부분 영어의 NIV 수준으로 직역과 의역이 섞여있다. 우리에게도 NASB나 YLT같은 직역과 NLT나 아니면 그보다 더 심하게 의미를 살려 번역한 Message Bible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로 유대인 신자들이 율법에 따라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로마교회 이방인 신자들은 아무 음식이나 상관하지 않고 먹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마태복음 15:11에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기준으로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다툰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바울 당시 로마교회의 이방인들도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음식을 가려 먹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다.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사자 굴에 던져질 지라도 왕의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말은 마태복음 7:1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장애물이란 말은 고린도전서 8:9절에도 나온다.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유대인 신자들에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정결법에 따라 도축하지 않은 고기는 먹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아무 음식이나 먹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을 놓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확신에 따라 남을 심판하는 것이 모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음식에 관한 율법을 폐지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고 있지 않은지 각자 자기 자신을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각자 자신의 신앙습관을 따라 남을 심판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도 남을 심판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남에게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심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14절에 나와 있다.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알고 그 다음에 그 아는 것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는 말과 그 안 것을 바탕으로 행동한다는 말은 둘 다 완료형을 사용하여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더구나 둘 다 1인칭 단수이기에 나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완전히 알고 완전하게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마도 마태복음 15:10-11이나 마가복음 7:15-23절에 나오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부정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정하다는 말은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아니다. 율법을 기준으로 볼 때 부정하여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이란 뜻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로마교회 대다수였던 강한 자들이었다. 저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지 먹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원어에서 15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개역이나 새번역이나 NIV는 15절 첫부분의 왜냐하면 이라는 말을 생략했다. 15절이 14절과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절 첫부분의 왜냐하면은 13절과 연결되는 것이고 14절은 13절에 대해 괄호 안에 넣은 설명과 같은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 남을 심판하지 말고 걸림돌을 놓고 있지 않은지 자기 자신을 심판해야 하는가 하면 만일 음식 때문에 그대의 형제 하나가 슬퍼한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 교회에서 믿음이 강한 자들은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상관 없다며 안먹는 자들을 비난한 것이다.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말은 슬프게 만들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한 형제를 분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사랑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예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셨다. 그런데 한 교회 안에 있는 형제도 사랑하지 않으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15절 뒷부분에 하지 말라는 명령이 또 나온다. 음식문제로 그 사람을 망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하지말라는 명령들은 점점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째로 13절에서는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말라고 했다. 두번째로는 15절 앞에 나타난 것처럼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물을 놓은 것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화가 나게 하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15절 뒷부분에 나타난 대로 망하게 하는 것이다. 망하게 한다는 말은 구원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상관없다며 함부로 강요하는 것은 걸림돌을 놓는 것이고 또 화가 나게 하는 것이고 결국 믿음에서 떠나 유대교로 돌아가게 만들어 멸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다. 그런데 저들을 비난하며 먹으라고 강요한다면 결국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 역사를 보면 로마교회 뿐 아니라 대다수의 초대 교회의 이방인 신자들은 그러한 유대인들을 심판하고 비난을 했기에 1세기 말쯤에는 유대인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음식으로 인해 함부로 심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까지 사랑하신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먼저 판단해봐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첫번째로 기억해야 할 요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