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11-12 이제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으니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이전 말씀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바울이 말하는 이웃의 범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원수까지 포함한다. 그러한 사랑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룬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미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으니 주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다.
13절은 원어에서 "그리고 이것"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NASB나 NIV는 이것을 하라는 명령으로 번역했다. 개역은 "또한" 이라는 말로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이 말을 번역하지 않았다. NASB나 NIV처럼 명령적 뉘앙스가 있다고 보면서 그 기능은 앞선 권면을 재활성화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ESV나 RSV는 "Besides this" 라고 번역했다. 이 두 번역과 같이 앞에서 권면한 내용에 이어 추가적인 권면이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2-13장에 제시된 내용을 종말론적으로 다시 상황화하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명령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바로 이어지는 여러분은 때를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 이라는 말은 앞서 말한 것을 근거로 로마교회 성도들은 이미 때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잠자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었기에 원수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라고 한 것이다. 바로 그것을 염두에 두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이제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또 바로 이어서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유있게 천천히 준비하기 보다는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방이 캄캄한 새벽 같은 구원이다. 아주 이른 새벽은 늦은 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이 캄캄하기만 한다. 하지만 늦은 밤과는 달리 이른 새벽은 머지않아 동쪽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현재 이미 시작된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로 어두워 보이지만 주님이 영광 가운데 오셔서 완성할 때가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를 마치고 대기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밝아오는 구원을 준비해야 할지 우리에게 그림언어를 사용해 생생한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보여주는 동영상은 침례식 장면이다. 좀 더 정확하게 제목을 붙인다면 바울이 보여주는 동영상은 침례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젖은 옷을 입고 다니는 장면이다. 이제 더 이상 젖은 옷을 입고 다니지 말고 젖은 옷을 벗고 빛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침례식에서 물에 잠겨있는 순간은 죽음을 상징한다. 옛사람은 죽어 땅에 묻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옛사람의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때는 침례 후 물에서 올라오는 장면이다. 침례를 받고 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젖은 옷을 벗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가지 명령어가 나온다. 첫번째 명령어는 12절에 있는 어두움의 행실을 벗으라는 것이다. 이를 침례식과 관련해서 생각하면 젖은 옷을 벗으라는 것이다. 어두움의 행실이나 젖은 옷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육신의 행실을 가리킨다.
믿는 자들이 이미 새 사람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있기에 이제 영적인 잠에서 깰 때가 되었다며 로마 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젖은 옷을 그냥 입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옷입고 원수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서로 지도권 다툼만 하고 있기에 한 말이다.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주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미워한다면 아직도 젖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고 어두움의 행실을 입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께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또 네 원수가 네 이웃이라고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직도 젖은 옷 입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이웃사랑을 모른다면 우리는 디오니수스 축제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고 나서 난장판을 벌이며 싸우는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젖은 옷 즉 육체의 행실을 완전히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젖은 옷을 벗었다면 그냥 벗을 채로 있을 수는 없다. 벗었으면 반드시 새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12절 끝에서 두번째 명령을 하고 있다. 그것은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전에 입던 젖은 옷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성도들이 새로 입는 옷은 모두가 똑같은 옷이다. 그 옷은 빛의 갑옷이다. 갑옷이라고 번역된 말은 로마서 6:13절과 고후 6:7에서 무기로 번역된 말이다. 바울 당시 무기란 말은 큰 방패와 창과 함께 갑옷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완전군장이다.
그럼 이 완전군장이 무엇을 뜻할까? 두가지 비유를 비교해보고 로마서 앞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두움의 옷은 육신의 욕망이다. 반면에 빛의 갑옷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빛이란 하나님의 속성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할 때도 빛이란 말을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가 과거에 입고 있던 젖은 옷인 육신의 욕망을 벗어 버리는 것으로 끝나면 안된다. 그러면 벌거벗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사탄의 공격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옷 입은 이유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위해서이다.
예수께서도 이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2:43-45에 보면 악한 귀신이 나갔다가 되돌아와보니 집이 비어있고 말끔히 치워져 있어 다른 입곱 귀신을 더 데리고 들어갔다고 하셨다. 벗고 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입어야 할 완전군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과거의 육체적인 욕망을 벗어버리고 그냥 있으면 안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또 다른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