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5-7 진노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양심을 생각해서 조세와 관세를 바치고 또한 그들에게 두려움과 존경까지 바치라.
이전 말씀에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통치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일꾼들로 사용되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와 각자의 양심을 생각해서 세금 내는 일에 복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5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며 세상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말한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진노 즉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노란 로마서에서 항상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말이다. 4절에서 세상 권세가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집행관이 된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5절에서도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 권세를 통해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권세에 복종하는 것은 그러한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은 또한 양심을 생각해서라는 것이다.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하지 말고 양심에 따라 하라는 것이다. 만약 처벌이 두려워서 복종한다면 볼 때만 잘하고 안보는데서는 법을 어겨도 된다. 이건 앞에서 말한 거짓사랑이다. 하지만 양심을 생각해서 복종한다면 그럴 수 없다. 양심이란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은밀한 중에 행한 모든 일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6절은 같은 이유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진노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 때문에 복종하는 이유로 이어지는 말을 하는 것이다. 양심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에 내는 조세를 잘 내지 않았다고 한다. 조세란 말은 로마시민이 아닌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받던 것이다.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기 때문에 조세를 내야 했다.
AD 55년에 태어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연대기(Ann. 13)를 보면 AD 58년에 간접세 징수를 맡은 무리들과 탐욕스러운 세리들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이 제기되어 약간의 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로마서가 기록되던 기간에 그러한 불만은 계속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평소에는 직접 접촉하길 꺼렸지만 이러한 문제로 직접 로마의 권력자들에게 불만을 제기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으로 보았기에 기독교인들에게도 유대인들과 같은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바울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유대인들은 조세를 내도 벌을 받지 않으려고 억지로 냈던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두려움이 아니라 양심에 근거해서 조세를 바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를 바친다는 말은 명령형이 아니다. 이미 일부는 그렇게 양심껏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6절에서 다시 한번 로마의 권력자들을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했다. 하지만 앞에서 나온 말은 신약성경에서 집사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이지만 여기서는 원래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것은 로마제국에서 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도 로마제국의 세무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세금 걷는 로마의 관리들을 하나님의 제사장처럼 생각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정직하게 바치라는 것이다. 왜 원수인 로마 제국의 관리들에게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하나? 그렇게 할 때 로마제국 관리들은 크리스천들과 다른 유대인들을 구별할 것이기 때문이다.
7절은 지금까지 말한 것의 결론을 내리는 명령이다. 그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갚아야 할 것을 다 갚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갚아야 할 의무란 세금만이 아니라 존경하는 태도까지 보이라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 네 가지에서 나타난다.
첫째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 조세를 바치라고 했다. 조세라고 번역된 말은 6절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들에게 받던 것이다. 두번째로 관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는 관세를 바치라고 했다. 이것은 물건을 수입할 때 내던 세금을 뜻한다. 이 두가지를 한 쌍으로 써서 일반적인 세금이란 뜻으로 쓰기도 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두 쌍의 단어는 두려워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할 이는 존경하라는 것이다. 두려워하라는 말은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라는 뜻이다. 존경이란 말은 로마 제국의 지도자들 앞에 머리를 숙여 그들의 지위를 인정해주라는 말이다. 결국 두려움과 존경은 세금만 바칠 것이 아니라 최고의 대우를 해주라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권력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조세나 관세를 바치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과 존경을 하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없다. 이것은 양심의 문제이다. 양심에 따라 한다면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벌을 받든지 안 받든지 상관없이 지키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하라고 명령한 이유는 그들이 훌륭해서나 예뻐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복음 전파 때문이다. 복음을 위하여 원수일지라도 사랑하는 것이다.
바울은 두려움과 존경을 보여주어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최고의 사랑인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바울이 왜 이런 부탁을 했는지는 그 당시의 연대기를 재구성해보면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클라우디우스가 AD 54년에 죽고 네로가 황제가 되었다. 로마서는 보통 57-58년 사이에 기록했다고 본다. 추방령이 해제된 후 3-4년 후에 로마서가 기록되어 전해진 것이다. 네로도 처음 5년동안인 AD 59년까지는 비교적 바른 통치를 했다. 따라서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엔 네로가 바른 통치를 하고 있던 때이다. 아직 기독교에 대한 본격적인 핍박이 나타나지 않았던 때이다. 바울이 로마서 13:1-7에서 로마제국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라고 말한 것은 국가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폭풍전야같이 고요한 속에서도 서로의 적대감에서 오는 팽팽한 위기의 긴장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가 기록된후 6-7년후인 AD 64년의 심각한 화재로 로마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네로의 대적들은 네로가 불을 놓았다고 고소를 했다. 네로는 비난의 화살을 크리스천들에게 돌려 핍박하기 시작했다. 베드로와 바울도 이 기간에 순교했다. 따라서 바울은 몇년 뒤에 일어날 핍박을 내다보고 이 부분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판단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그렇게 기록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13:1-7은 앞으로 다가올 핍박을 예언하고 국가 권력에 복종하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무시하고 오늘날 정치가들이 이 구절을 인용해서 무조건 공권력에 복종하라고 하면 잘못 인용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원래 로마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에게 준 것이다. 복음전파를 위해 원수인 로마제국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만약 정치가들이 이 구절을 인용한다면 남의 편지를 훔쳐보고 소리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 말씀은 정치가들이 아닌 우리와 같은 신자들에게 준 것이다.
우리도 국가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세금도 제대로 내야 한다. 운전할 때도 교통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다 지킨다. 하지만 그들과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차이점은 두려움과 양심의 차이이다. 세상 사람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법을 지킨다. 하지만 우리는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심에 따라 국가의 기관이나 관리들에게 최대한의 존경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크리스천들을 칭송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 권력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다면 그 때는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제국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말했지만 사도 요한은 계시록 13장에서 로마제국을 사탄의 일꾼으로 묘사했다. 네로 황제때인 AD 64년에 시작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도미티안 황제 때에 최고조에 달했다. 도미티안 황제는 AD 81에 통치를 시작해서 AD 96년에 죽었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이 기간에 기록된 것이다. 그래서 같은 로마제국을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이라 했고 요한은 사탄의 일꾼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무조건 권력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 기준은 권력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때이다.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어떠한 권력이라도 저항해야 한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을 당시 유대인들이 최고의 원수로 여겼던 로마제국의 통치자를 원수들의 대표로 말한 것이다. 따라서 로마서 13:1-7절은 단순히 국가 권력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안된다. 이는 최고로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최고로 미워하는 원수에게 까지도 친절을 베푼다면 우리가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칭송을 받을 것이다. 칭송 뿐 아니라 그들도 감동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의 최고봉에 올라야 하는 이유이다. 이 시대의 신자들의 풍조도 바울시대와 마찬가지로 거짓사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면 쓴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복음 전파를 위하여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최고봉에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